권인화 변호사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민주 평통 소식을 통해서였다. 오스트리아에 한국 변호사가 있다는 사실도 놀랐지만, 연세가 있으신 어른들이 참여하는 줄로만 알았던 민주 평통에 젊은 변호사가 새로 위촉되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기만 했다. 모두가 퇴근을 했을법한 저녁 7시 반, Stubentor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권인화 변호사를 만났다.

권인화 변호사

Q. 어떻게 오스트리아에서 변호사로 일하시게 되었나요?
주로 변호사라고 말씀드리면 이곳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한국에서 로스쿨을 마친 후, 변호사 시험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한국 변호사 입니다. 학교를 졸업 후 우연히 비엔나 현지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를 통해 잡 오퍼를 받게 되었어요. 이곳에서 같이 일해보는게 어떻겠나구요. 처음에 별로 복잡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가방 두개에 짐을 싸서 비엔나로 건너왔습니다.

Q.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제법 규모가 있는 로펌에서 약 1년 반 동안 국제 소송팀에 속한 외국 변호사로 일했었어요. 그러다가 좀더 국제 중재 분야에 전문화 된 팀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옮기게 된 곳이 Zeiler Partners입니다. 이곳은 큰 로펌은 아니지만 국제 중재 분야와 고용 노동 업무 분야에 전문성을 띄고 있는 로펌으로, 이 분야에 있어서는 오스트리아 내에서 가장 큰 팀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 법무 분야는 세계적인 법률시장의 평가기관에서도 최상위에 링크될 만큼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명성대로 다루고 있는 사건도 다양하고, 또 이 분야에서 인정받는 분들과 한 팀에서 일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죠.

Q. 변호사로서 국제 법무 분야를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한국에서는 법을 공부한다 할지라도, 학교에 다니는 중에는 실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가 로스쿨 재학 당시, 한번은 국제 상사 중재 모의 재판 대회에 참여했었어요. 한마디로 변론대회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이 대회는 저에게 정말 인상적인 경험이었어요. 한가지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그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로 본다는 것이 흥미 있게 다가왔죠. 각 나라의 법은 결국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의 배경위에 설립되게 되는 거잖아요. 한 사건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 그리고 서로 다른 해석,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저에게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오면서 국제 법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Q. 한국에서의 변호사 공부와 이곳에서의 변호가 공부에 많은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한국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어떻게 법을 공부하는 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법을 공부한다고 무조건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학부 때 법을 공부 했지만 변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 3학년 교환학생 이후였어요. 학부 3학년 당시 교환학생으로 미국 로스쿨 석사 과정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좀더 강의식 수업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소위 말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경험했죠.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로 이루어진 수업들이 저에게는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어요. 또한 의뢰인에 맞게 서면을 작성하는 과정 등 실질적인 것들을 많이 배웠는데, 점점 흥미가 생기면서 ‘변호사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학부생인 제가 석사과정 수업을 듣는 것인데도 교수님 피드백도 좋고, 학점도 생각보다 잘 나오면서 법조계로 가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졸업할 시점에 한국에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로스쿨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Q. 한국 변호사로서 외국에 취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텐데요, 혹시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외국 진출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해 줄 말이 있으시다면요?
이곳에서의 어려운 점이라면 제가 하는 행동하나 말 하나가 한국을, 넓게는 아시아를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업무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국제적인 법무환경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일하는 한국 변호사가 저 혼자이기에 한국인에 대한, 한국의 법조인에 대한 인상이 저로부터 규정지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책임감을 가지게 합니다.
또 다른 점으로는 언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역시 국제 사회에서 국제 업무를 담당하길 희망하고 있다면 영어공부는 필수라고 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말기를 바래요. 제가 처음 오스트리아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오스트리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따라서 망설일 수도 있었을 법 한데, 저는 되려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지금의 길을 열어주었죠. 그러니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Q. 변호사님은 이번에 민주 평통 자문 위원으로 위촉 되셨다고 들었는데, 먼저 민주 평통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민주 평화통일 자문 회의는 헌법 92조에 따라 설립된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으로 국민참여 통일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남북 분단 상황에 호응하는 대한민국만의 특이 기관으로 국내외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 도출 등을 통해 남북 평화를 모색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 평통의 의장은 대통령이시고, 민주 평통의 자문위원들은 국내 및 해외에 거류하며 “범민족적 역량 결집”을 통해 정보교류 및 민간 교류 사업을 계획하고 또 진행하고 있습니다. 거의 각 나라마다 민주 평통 분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스트리아 분회는 민주 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회의 내 북유럽 협의회에 속해 있어요. 비엔나에는 총 9분의 자문위원이 계시는데, 도시 크기와 인구에 비교했을 때, 많은 수의 자문위원이 이 곳에 계신다고 할 수 있죠. 민주 평통 자문위원들은 모두 민간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나누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Q. 새로운 민주 평통 자문위원으로서 포부가 있다면요?
제가 민주 평통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고 나서, 기존의 자문 위원들께서 저에게 거는 기대 중 하나가 보다 나은 ‘소통’이었어요. 젊은 청년이니 좀 더 소통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저도 이 소통의 문제에 인터넷이나 다른 미디어 매체들을 좀 더 활용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에 동포사회에 한정되어 있던 행사들에 독어/영어 지원을 통하여 한인 동포를 대상으로 뿐만 아니라 대상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일도 고려 중이에요. 예를 들면 대사님을 모시고 남북 관련 대담회를 진행하되 영어 통역을 넣어서 외국인에게도 이 문제를 더 쉽게 알릴 수 있는 방안 등을 생각 중에 있습니다. 또한 행사의 문서 기록화 등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Q.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목표는요?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고, 지금은 비엔나에 적극적으로 정착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곳에 혼자 뚝 떨어진 섬처럼 지냈거든요. 일하고 집에서 쉬고, 또 일하러 가기를 반복했죠. 그러다 보니 오스트리아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을 갖지 못했어요. 이제는 독일어도 좀 더 배우고, 이 도시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비엔나 실정과 경제 등에도 좀 더 관심을 갖고 말이죠.

Q. 끝으로 오스트리아 한인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 드릴게요.
이곳에서 한국 교민 분들이 함께 모여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외국에서도 동포를 위하는 마음은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비엔나는 좋은 동포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어르신들을 보면, 교민 사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마음을 쓰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도 이곳에서 작은 힘이나마 비엔나 동포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 상공인분들에게 노동문제라던가 일반 상사 문제와 관련하여 혹시 정보를 얻는데에 한계가 있으시다면 어떤 문제건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 윤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