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지 휴먼 인터뷰 진행을 놓고 새로운 제의가 들어왔다.

“여기서 좀 남다른 길을 걷고 있는 학생들을 소개하면 어떨까요? 우리 학생들 중에 이런 경우가 있다고 소개한다면 특별하고 신선할 것 같은데…”

그리고 거론된 이름이 바로 ‘김도현’ 이었다. 경찰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는 김도현씨는 오스트리아 이민 1.5세대로써,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찰학교에 진학한 케이스라고 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처음 김도현씨를 만나던 날, 나는 처음 그의 훤칠한 키에 놀라고, 또 너무나 유창한 한국어 솜씨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무엇보다 아직 어리지만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게 느껴지는 그의 깊은 생각들에 감동하게 되었다.

Q. 간단히 본인 소개를 부탁할게요!
A. 안녕하세요, 김도현입니다. 여기 친구들은 “도얀”으로 불러요. 태어난 곳은 경기도 안양이지만 3살 때 부모님과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왔어요. 처음에는 비엔나에 잠시 거주하였지만 곧 Niederösterreich에 있는 Leobersdorf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Sportsgymnasium에 갔었고, 그 후에 Handelsakademie를 졸업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하다가 나중에는 권투도 한 5년 정도 배웠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면서 권투를 그만 두게 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 군대를 가야 했기에 작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군복무를 마치고, 이제 경찰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Q. Leobersdorf이면 자라면서 한국사람들과 교류가 적지 않았어요?
A. 동네에 아직도 아시아 사람들이 드물어요. 제가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아, 저 친구 아시아 식당 아들이구나’하고 알아요. 아주 어렸을 때, 학교에서 터키나 세르비아 애들이 놀리고 괴롭혔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형에게 달려갔어요. 형은 저보다 3살이 많은데, 워낙 키도 크고 그래서 형이 있으면 친구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어요.(웃음) 비엔나와 거리는 좀 있지만, 토요일에는 항상 형이랑 둘이 손잡고 한글학교에 갔었어요. 어린 마음에 기차를 타고 나가니 마치 여행을 가는 것 같아서 한글학교에 갈 때마다 설레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 예배를 드리러 비엔나에 갔구요. 저는 아직도 토요일에는 한글학교에 가요. 저보다 각각 11살, 15살 어린 동생들이 있거든요. 지금은 제가 동생들 보호자로 아이들을 한글학교에 데려가고 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오고 있어요.

Q. 많은 친구들이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자랄 때,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시기를 겪는다고 해요. 그런 점에서 어려웠던 적은 없었나요?
A. 특별히 혼란이 온다, 혹은 어렵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마음의 갈등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오스트리아 친구들과 있을 때는 ‘나는 한국 사람이라 오스트리아 애들과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교회에서 한국 친구들이랑 있으면 ‘나는 여기서 자라서 한국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지만 크고 나니까 그런 것들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 같아요.
요즘은 오히려 한국인이라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여름에 한국에 가면 정말 너무나 즐겁거든요. 여기에서도 현지인들 사이에서 한국이 많이 알려지면서 주변 친구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또 제가 Niederösterreich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투리를 쓸 수 있거든요. 한국 친구들 앞에서 사투리를 하면 모두 신기해 하곤 해요.

Q. 요즘 특히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이 잘 알려지고 있나요? 한국인이라 좋다고 생각했던 구체적인 일들이 있을까요?
A. 제가 18살이 되기 전에는 사실 제 스스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K-pop도 사실 잘 모르고 들어본 적도 별로 없었거든요. ‘나는 오스트리아에 사니까, 여기 음악을 듣자’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인종차별로 있고 하니까 내가 너무 한국 노래만 듣고 하면 저를 다르게 볼 거라는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K-pop이 너무 유명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도 2pm 이나 빅뱅 같은 그룹들을 듣기 시작했는데 애들이 10년전 음악을 듣는다며 놀리더군요. 지금은 더 일찍 관심을 두지 않았던게 아쉬워요.
제가 K-pop에 관심을 두면서 좀 남다른 경험도 있었어요. 작년에 한국 아이돌 그룹들과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한번은 제가 유럽여행 중 우연히 어떤 한국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이 연예인 메니지먼트사 관계자였던 거예요. 저에게 독일어, 영어가 가능한지 면허는 있는지 물어보더라구요. 그리고서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는데, 바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유럽 투어에 스태프로 참여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비행기, 호텔예약부터 운전, 식사예약과 무대 통역 등등을 맡아 하면서 비엔나는 물론이고 독일,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및 터키 지역 콘서트 투어에 참여했지요. 빅톤이나 빅스의 래퍼 라비, 유투버로 유명한 그레이스, 또 래퍼 제씨랑도 함께 일을 했었어요.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그룹이 투어를 나와도 유럽에서 만명 정도는 모이는 것 같아요. 제씨의 경우에는 그 두, 세배의 관객들이 모여들었어요.

Q. 그럼 경찰이 되기로 한 것은 어떤 계기에서 였나요? 혹시 어릴 적 꿈이 경찰이었어요?
A. 어릴적부터 군인이 아니면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워낙 운동을 좋아했고, 또 아버지가 한국에서 군인이셨었거든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죠.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사실 군대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군인은 사회와 격리된 일을 많이 하는데, 경찰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함께 일을 하니까 더 장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오스트리아 경찰 학교 시험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학생을 선발하게 되나요?
A. 경찰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일단 오스트리아 시민권이 필요해요. 첫 번째 시험은 컴퓨터로 치르게 되는데, 이때 독일어, 영어 수학, 역사 시험은 물론이고 기억력 테스트도 있어요. 한 과목의 낙제도 없이 모든 과목을 통과해야만 2차 시험으로 갈 수 있어요. 제가 지원했을 때는 약 100명중 60명 정도가 이 1차 시험에서 떨어졌던 것 같아요.

이어지는 2차 시험은 체력에 관한 거예요. 수영과 5km달리기, 장애물 경주 등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던건 80kg짜리 인형을 들고(혹은 끌고) 정해진 시간 안에 300m이상 달리는 거였어요. 경찰생활 중에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닥칠 수 있으니, 이런 상황을 먼저 시험해 보는 것 같아요. 남은 40명 중 절반 이상이 또 이 시험에서 탈락했죠. 그리고는 신체검사가 있구요, 그 이후 최종 면접이 있어요. 저랑 같이 시험 봤던 친구들 중에서는 대략 10명 정도가 최종 합격을 했던 것 같아요.

Q. 경찰학교 면접은 어땠었나요? 동양사람이라 좀 다른 시선이 있지는 않았어요?
A. 면접에서는 여러 질문을 하는데, 특히 말을 얼마나 조리있게 잘 하는지를 보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주요 질문은 ‘우리가 왜 너를 선택해야 하는가’ 였어요. 저는 오히려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었어요. 면접관들도 처음으로 아시아 사람이 신청한 경우라며 오히려 좋아했었어요. 요즘 비엔나에 외국인 인구가 많아지는데, 아시아 사람도 필요하다며 22구에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나중에 22구 쪽으로 근무신청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Q. 이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경찰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 않나요?
A. 경찰학교는 2년 과정이에요. 첫 해에는 3구 학교(Marokkanergasse)에서 이론 수업을 듣구요, 그 다음해에는 인턴쉽을 병행하죠. 그런데 그 2년 동안 세부 분야가 나눠져요. 저는 아버지가 식당을 운영하시면서 예전부터 세금 관련 일을 도와드리면서, 나중에 Finanzpolizei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또 Cobra(범죄수사) 쪽도 고려 중에 있어요. 하지만 경찰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공부는 좀 더 하고 싶어요. 일을 하면서 대학을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저는 Polizeilische Führung이라고 경찰 조직이나 행정을 공부하는 학사 학위 과정이 있는데, 졸업 후 일을 하며 이 과정을 더 밟고자 생각중이에요.

Q.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경찰 학교에 진학한 케이스라고 하던데, 그런만큼 그런 결정이 쉽지가 않았겠어요. 마지막으로 친구들이나 또 한글학교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A. 저는 한국 사람들도 오스트리아에서 경찰, 군인 등 여러 분야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많은친구들이 의사나 변호사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 의사, 변호사는 흔한 직업이 아닐까요? 다양한 길이 정말 많아요. 저는 친구들이 또 동생들이 좀 더 자신의 소신을 믿고 자신이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이니까요. 제가 후배들을 위해서 특별히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누구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 주길 바래요. 매주 토요일은 동생들을 데리고 한글학교에 가니까, 그곳에 오시면 쉽게 저를 만나실 수 있어요.

자신이 ‘한국인 1호’ 이기 때문에 하는 일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는 김도현씨. 자신의 한마디 말, 하나의 행동이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인은 이렇구나’하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청년에게 어찌보면 이런 일들이 커다란 부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관심도 이제는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앞으로 시작될 경찰학교 생활도 훌륭히 마치고, 곧 22구에서 경찰 유니폼을 입고있는 김도현씨를 마주할 그날을 기대한다!

글 윤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