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헌호 신부 / 사진: 카톨릭 신문

내가 사는 학교 안 사제관 뒤뜰을 지난겨울 이전에 포장해 두었던 고무판을 걷어내고 아스팔트로 새로 하면서 주변의 잔디와 잡초들이 자라던 곳까지 좀 더 넓게 포장하는 것을 보았다. 아침식사 후 1년 365일 거의 날마다 빠짐없이 조깅과 산책을 겸하는 길이 끝나는 지점이기에 눈에 많이 들어왔다. 사무처장의 설명은 학교 안 주요도로 아스팔트 포장이 너무 오래 되어 새롭게 할 때 뒤뜰도 다시 포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와 관계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이 경우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행동이고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새로 포장한 길에 익숙해질 무렵인 지난 3월말부터 그 자리에 새로운 현상이 시작되었다. 날마다 그 위를 지나기에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었다. 아스팔트 포장 여기 저기 조금씩 볼록 볼록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이게 뭐지?”라는 의문만 가질 뿐 호기심 많은 나지만 어떤 해석도 할 수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현상이었다.

오래 전, 아스팔트로 덮인 접시꽃밭에서 이듬해 그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1m 정도까지는 자랐지만 결국 꽃은 못 피웠고, 이듬해 다시 올라오지도 못 했던 그 접시꽃 대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른 곳 여기저기서 연약한 잔디가 경계석과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올라온 것을 본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럴만한 접시꽃이 있지도 않았고 잔디의 세력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러한 현상도 익숙해져서 무심코 지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그저께 그 볼록 볼록 솟아오른 것들 중 몇 곳에서 몇 개의 민들레 잎들이 삐죽이 밖으로 뻗어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니, 이 민들레들이 무슨 힘으로?” 그 모습에 놀란 나의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곤 오늘 아침까지 그 민들레에 대한 잡념에 가까운 사유가 이어져서 마침내 이번 칼럼에 이 장면을 소개하기까지 되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이 민들레들은 어떤 자의식을 갖고 있을까? 자신을 덮고 있는 아스팔트를 뚫고라도 올라와야겠다는 어떤 의식을 갖고 이렇게 자라고 있을까? 민들레의 내면세계에 그러한 의식과 의지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무슨 힘으로? 뚫고 올라오고 있는 것은 사실(fact)이고 지금도 그 자리에 가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남은 것은 이 질문에 답을 구하는 일뿐이다. 민들레 자신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고 있지만 민들레 안에는 그러한 능력과 힘이 있는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덮는 일을 경험하지 않은 일반 노지의 민들레들이 여기 저기 쉽게 자라 올라오는 모습에서는 그 안에 아스팔트조차 뚫을 수 있는 기운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관찰할 수 있는 자의식을 가진 내 안에 든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이것은 나의 삶을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심껏 사는 것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편으로 그 강력한 생명력의 민들레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더 이상 생존하지 못 하는 한계를 가진 것처럼, 나에게도 한계가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가능성은 어디까지이며 한계는 어디서부터일까? 이전 못지않게 다시 한 번 더 궁금해진다.

나는 피조물이기에 조물주가 정해준 순리에 따라서 해야 하지 내 맘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옳게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조물주께서 나에게 심어놓은 능력과 힘이 어디까지인지 대단히 궁금한 오늘이다. 이것을 최대한 살리는 삶을 가능한 대로 길게 살아야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글 전헌호 신부

  • 서울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학사 (1978년)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비엔나대학교(Universität Wien) 신학 석사, 박사 (1990)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