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헌호 신부 / 사진출처 카톨릭 신문

불과 20% 남짓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 20대의 종교인 비율을 접하고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거나 어떤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큰일이 난 것처럼 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염려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을 것이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교 중에서 어느 종교에 속하든 일반 신자로 소속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염려는 다양할 것이고, 스님과 목사, 신부처럼 본격적인 성직자이자 엘리트 종교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염려도 다양할 것이다.

다양한 염려 중에서 ‘지금의 20대 청년들이 30~50대가 되는 동안 종교현상은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저들이 과연 지금 존재하는 각종 종교 시설과 조직을 운영하면서 제대로 유지해낼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염려도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염려는 다른 종류의 염려보다 강할 것이다. 이러한 염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대책까지 강구해나가야 할 염려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러한 염려에 대해 염려해야 할 것도 있는 것 같다. 우선 20대의 20% 남짓밖에 종교단체에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시각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많이 지어놓은 종교 시설들을 유지,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그들에게 안기며 그들이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각도 이에 속한다. 또한 기존의 종교들이 지금까지 신봉하며 가르쳐온 것을 영구불변의 절대 진리로 여기며 젊은이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고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각도 이에 속할 것이다.

지금의 5060대 중에서도 많은 책을 읽고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면서 넓은 세상의 온갖 요소를 보고 체험한 결과, 열린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지닌 종교에 대한 생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이전 세대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태어나서 자란 20대의 머릿속에 든 세계관과 종교에 대한 생각은 더욱더 많이 다를 것이다.

이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세계관과 종교관이 형성되고 있는지, 이들이 5060대가 되면 또 어떠할지는 대충 짐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6.25전쟁 이후에 태어난 필자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중공군을 죽였기에 살아남은 아버지의 그 내면세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아버지도 필자도 때때로 마음고생을 했다는 회한을 안고 있다.

현재 20대의 머릿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세계관과 종교관은 분명히 5060대의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고, 그렇게 형성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막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성세대와 다른 것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조차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금의 5060대 종교인들의 삶이 20대에게 감동이 되고 있다면 20대의 종교인 비율이 20% 남짓보다는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 5060대의 종교인들이 아무리 열성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더라도, 지금의 이 몸으로 주어진 공간과 시간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짧은 주기로는 몰라도 긴 주기로 지속적인 감동을 주는 모범적인 종교생활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니체가 언급한 초인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고 나머지는 순리에 맡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지금의 5060대 못지않게 20대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의지를 갖고 잘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전헌호 신부

  • 서울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학사 (1978년)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비엔나대학교(Universität Wien) 신학 석사, 박사 (1990)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