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 최초의 황제이다. 본명은 프란츠 요제프 카를 (Franz Joseph Karl)이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는 프란츠 2세,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로서는 프란츠 1세이다.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이 수립된 후,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된 1806년까지 2년간 두제국의 황제를 겸했으며 이 기간 동안 역사상 유례없는 이중 황제(Doppel Kaiser)로 불리게 된다. 그 후 183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을 통치했다.

오스트리아 제국 (1804-1867)의 영토

그는 1768년 2월 12일 현재의 이탈리아에 해당하는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에서 레오폴트 2세와 그의 배우자 마리아 루도비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2세는 나중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1792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24살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프란츠 2세는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문제를 떠안게 된다. 그는 선황의 입장과 동일하게 반혁명적 보수 정치의 노선을 걷게 된다. 하지만 사실상 그의 정치 노선은 20여년에 걸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패배한다.

즉위 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명을 맺어 반프랑스 정책을 펼치며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지원했으나, 크게 패하고 롬바르디아와 라인 강 왼쪽 땅을 상실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2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러시아와 함께 잠시 선전하기도 하지만 1799년 러시아가 동맹에서 이탈한 후 결국 패배하였으며, 이로 인해 라인강 서안과 이탈리아 영유를 포기한다. 이 두 차례의 패배로 인해 상당히 많은 영토를 빼앗기게 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힘도 땅도 없는 제국이 되어 위신을 상실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츠 2세는 프랑스에서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나폴레옹과 프란츠 2세

1804년 5월 18일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국 성립을 선포하자, 이에 대항해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중심으로 신성 로마 제국 영역 안의 자신의 영지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영지까지 포함한 지역을 오스트리아를 제국(Kaisertum Österreich)으로 높이고 자신의 타이틀을 대공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 선포했다. 그는 나폴레옹과의 전쟁 중 계속된 패배로 인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황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오스트리아 대공국와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 갈라치아-로드메리아 왕국, 부코비나 공국 등을 합쳐 새로운 제국을 세웠다. 그렇게 프란츠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인 이중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역사상 유례 없는 이중 황제였다. 이 제국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를 합친 나라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지배하에 있는 영토들을 통틀어 비공식적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라고 부르긴 했으나, 이들의 공식적인 첫 제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이었다.

오스트리아 제국 국장

그 후 프란츠 2세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1세를 끌어들여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만들어 프랑스에 또다시 대항했다. 그러나 1805년 12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면서 동맹이 해체되었다. 이 전쟁은 세 황제가 붙은 전쟁이라는 뜻에서 삼제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806년 6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선전포고 한다는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자진해서 제국 해체를 결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포기하게 된다. 이로서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신성 로마 제국이 소멸되었다.

앞선 여러 차례의 패배에도 프란츠 2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1807년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다시 한번 싸우지만 역시 패배했고, 1809년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역시 아스펜-에슬링 전투와 바그람 전투에서 크게 패해 해체되었다. 1810년에는 자신의 딸 마리 루이즈를 나폴레옹과 결혼시키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동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패하고 쇠퇴하자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을 공격하고, 오스트리아 제국도 1813년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을 가입한다.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며 회심의 복수를 하게 된다.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약화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키우는 데 힘썼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국가적 지원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특히 예술과 문화, 교육과 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적극 후원했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도나우 강에 증기선을 띄우기도 하고, 철도를 건설하기도 했다.

1835년 3월 2일 43년 간의 통치를 뒤로 하고 황제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서거했다. 사망 원인은 폐렴이었다. 평생 유럽의 반혁명적 보수 정치의 아이콘이었던 프란츠 2세는 사후에도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수주의적 정치노선을 굳건하게 유지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남았다.

글 이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