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C O V I D – 19

재오 한인간호협회 회장 이영실

C O V I D -19 ( 여 름 )

이영실

 

유치원에 다니는 착한 어린이들은 새로운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해야하는것 마냥, 세상이 바뀌어 나이가 많을 수록 더욱 지시에 수궁해야하는 시절을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모양의 그릇으로 새로운 꿈을 상상하고 있을, 금년의 음력설 즈음에 중국에서 부터 어수선한 소식이 바람과 뉴스로 전해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행병이란다. 감히 유럽까지는 위험이 얼정거리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은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바람의 속도는 짐작하기 어렵게 나무 가지들을 이쪽저쪽으로 흔들며 공기를 섞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티롤(Tirol)에서 제1호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서서이 여름 소나기 이후에 솟아나는 송이버섯 마냥 코로나 확진자들이 나타났다.

버섯은 눈에 뜨이기나 하지만, 너무너무 작아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무서운 도둑들이 우리 대문앞에도 서있다.

이제는 아예 입에다가 텐트까지 치고 (마스크) 외출을 해야한다.

화려한 봄을 숨어서 지내야했다. 내가 도둑인가?! 우리는 감염증과 두려운 술래잡기를 하는걸까?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며, 상상으로 쌓아올라가는 벽돌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사이 해맑은 여름이 인사해왔다.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계속 헝가리에 살고있는 옆집 아저씨로 부터 전화가왔다.

국경이 열렸으니 서둘러 와서 잔디를 깎으라 하셨다.

봄이 오고 있는 동안 잡초는 내키 만큼이나 자라있을 것을 상상하니, 마음에 부담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갈 때마다 먼지, 청소 그리고 추운 겨울철이 지나면 이것저것 수리해야 하는 것들은 없어야 하는 혹 같았다.

간장종지만한 내 마음은 ‘원수 같은 집’이라 생각되어졌다. 남편의 사후로 ‘팔아볼까?’라고 몇번이나 구상을 해보았다.

아직 학생인 딸이 따라 나섰다. “엄마, 나도 도울게.” 고마운 물음이다.

나는 풀을 깎고, 딸은 방을 치우다가, 일을 바꿔가면서 해보기도 하고 필요없는 가구는 모두 정원으로 꺼냈다. 방이 넓어지자 딸은 홈 오피스를 만들자 했다. 거 좋은 생각이다.

지금까지 인터넷트 시설이라고는 들랑거린 적이 없는, 빈곤한 농부의 집, 흙과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땅, 영혼을 바친 농부가족이 살았던 집에 현대적인 기계를 들이대기가 약간 죄스런 마음이 꿈틀거렸다. 하늘처럼 넓은 부모님의 사랑을 대대로 물려주며 땅의 귀함을 가르치는 농부의 소박한 마당에 뭐랄까 총대를 드리대는 기분이었다.내 삶의 밑천이 너무 뒤지고 모자라서일까? 나는 구식을 선봉하는 할미이고보니, 새로운 용어에도 싫어하는 마음이 앞선다. 기술자들이 와서 지붕에 안테나를 세우더니

빌란 루우터(WLAN Router:Netzwerkgeräte)를 준비하라했다.

딸은 2개월 동안의 계획으로 살림 꾸러미가 제법 컸다. 논문을 쓴다고 PC가 두 개, 아이팻 등등의 미운 물건들이 들어닦쳤다.

시야에 방해가 덜 되는 곳은 서서이 정리 하기로 하고 대충 편리하게 차량이 들어오는길, 자전거가 빠져나가는 길을 만들었다.. 며칠동안 일을 해 보니, 원수의 집이 사랑의 집으로 변해갔다.

마음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을 닮아가며 여름바람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일을 많이하면 만족감이 높아지는 걸까?

한심해 보이는 일거리들이 줄을지었다. 한숨만 쉬다가 거미줄을 빗자루로 쓸어내고 구멍난 곳은 세메트를 이겨서 타이어 빵구 때우듯 매끄름하게 구멍을 막았다. 유럽은 집을 스스로 짓거나 수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신기한 도구들이 시장에 수두룩하게 나와있다. 주부들이 부엌에서 채소를 자르던가, 죽을 만들 수준이면, 남자들이 하는 가벼운 일들은 할 수 있다. 에델봐이스 꽃을 닮은 하얀색으로 벽을 칠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니, 꽝촌에서의 피트니스가 되었다. 옛 가구들은 버리려했는데 완전한 나무로 만든 귀한 물건이어서 겉은 문지르고 그리스의 상징인 흰색과 파랑으로 칠하고 의자 두개도 색으로 시도를 해보니 바닷가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정원에 아예 여름 부엌을 임시로 마련하고 곤충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음식 냄새는 밖에 머무르게했다.

날이 저무는 시간이 되면 몸은 피로에 젖지만 잴 수없는 뿌듯한 마음이 살고 싶게 했다.

내 나이 지금 71살, 죽기 전의 마지막 집단장도 나를 위해 좋은 기회였다.

창고의 천장에는 ‘COVID 19 ‘이라 검정색으로 썼다. 이 역사는 내 손자나 손녀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글 이영실 간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