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네 아름다움 –

사군자, 선비의 향기 ·

 

 

사군자 주제의 마지막 장인 대나무 기고에 이르렀다. 봄에 매, 여름에 난, 가을에 국 그리고 겨울에 대를 각각 표상하는 사군자는 오래토록 옛 어른들로 길러지고 그려지어 그 뜻을 되새김에 오늘날에도 문인화 중 가장 널리 애호되고 있다. 그 중 대에 대한 예찬은 일찍이 <시경>에서부터 보이며, 그 회화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오를 만큼 아주 이르다. 덕망 높은 인물을 대에 빗대기도 하고, 여러 문인들로부터 아낌을 받아 대나무에 대한 애칭과 고사 또한 다양하다. 그러한 대나무의 뜻은 무엇이며 어찌하여 그토록 칭송받아 왔는지, 사군자의 마지막 주제인 대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우주 만물은 끝없이 변한다. 그러나,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 변하지 않음으로 만가지 변함에 대응한다’라 하는 웅대한 뜻을 몸소 보여내듯 대나무는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아니한다. 사철 푸른 대의 그 덕성과 더불어 속이 비어있어 만물을 포용하고, 곧음으로 중용하며 한결같음을 지켜내니, 사군자 중 가장 널리 또 많이 칭송된 것이 또한 이 대나무 이다. 그러한 대의 의의가 당나라의 문호 香山居士 백거이의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竹似賢,何哉?
竹本固,固以樹德。君子見其本,則思善建不拔者。
竹性直,直以立身。君子見其性,則思中立不倚者。
竹心空,空以體道。君子見其心,則思應用虛受者。
竹節貞,貞以立志。君子見其節,則思砥礪名行,
夷險一致者。
夫如是,故君子人多樹之為庭實焉。

대나무는 현자와 닮았는데, 어찌해서인가?
대나무 뿌리는 단단하여, 단단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뿌리를 보아, 곧 뽑히지 않는 아름다운 덕이 서 있음을 생각한다.
대나무의 성질은 굳세어, 굳셈으로써 자신의 몸을 바로 서게 한다. 군자는 그 성질을 봄에, 곧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아니하여 중용함을 생각한다.
대나무 속은 비어 있어, 비움의 도를 몸소 보여 낸다. 군자는 그 빈 속을 보아, 곧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타인을 받아들임을 생각한다.
대나무의 마디는 곧아,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마디를 봄에, 곧 자기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 평탄할 때나 험준할 때나 한결같이 행동함을 생각한다.
이러함에, 고로 군자들은 대를 뜰에 여럿 심어 귀감으로 삼고 있음이다.

 

이러한 대나무의 뜻을 가장 잘 그려낸 우리네 어른은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이다. 선생은 조선 제일의 묵죽화가로서, 선생이 대의 그 뜻을 그린 이후 어느 누구도 그 위상을 넘보지 못하였다.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자로 왕가의 자손이기도 한 선생은 일찍부터 묵죽으로써 그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팔뚝에 칼을 맞아 다시는 붓을 잡지 못할 위기에 처하는데, 그 고난을 이겨내고 전력을 다하여 필생의 역작을 남기니 당시에도 일세지보(一世之寶)라 불리운 《삼청첩》이 바로 그것이다. 41세의 탄은은 먹물들인 비단에 금니(金泥; 아교풀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를 사용하여 매, 난, 대를 그리고 그에 제를 다니, 이듬해 이를 완상한 선생의 벗 최립은 마치 옥과 같이 그려낸 이 한 첩 덕분에 남은 여생에 눈이 흐려지지 않으리라는 감회를 남겼음이 전해진다. 더욱이, 탄은 이정과 간이 최립 그리고 석봉 한호라는 당대의 시서화 삼절이 함께한 작품이니 어찌 당대부터 일세지보이라 칭송받지 않았을까. 사백년의 세월에도 여여히 광휘롭다.

보물 제1984호 《三淸帖》 中 筍竹 : 순 나는 대 – 灘隱 이정(李霆) · 흑견금니 · 간송미술관

보물 제1984호 《三淸帖》 中 風竹 : 바람 맞는 대 – 灘隱 이정(李霆) · 흑견금니 · 간송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무단전재 및 DB금지]
대나무가 오래 또 널리 예찬 받은 만큼, 대나무를 그리는 데에는 여러 종류의 화풍이 존재한다. 막 자라나 돋아나기 시작하는 순죽(筍竹), 봄철에 새로이 난 신죽(新竹), 왕죽을 그린 통죽(筒竹), 이슬 맞는 노죽(露竹), 비 맞는 우죽(雨竹), 바람을 맞는 풍죽(風竹) 그리고 말라가는 고죽(枯竹)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탄은은 이와 같은 대의 여러 모습과 장면을 삼청첩에도 그려 남겼다. 자신의 별서인 공주 월선정에 천 그루의 대를 심고 기르며 관찰하고 통시하였기에 이처럼 다양한 대나무의 생장을 사실적으로 또 그 뜻을 오롯이 그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보물 제1984호 《三淸帖》 中 雨竹 : 비 맞는 대 – 灘隱 이정(李霆) · 흑견금니 · 간송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무단전재 및 DB금지]
보물 제1984호 《三淸帖》 中 枯竹 : 마른 대 – 灘隱 이정(李霆) · 흑견금니 · 간송미술관

삼청첩의 그림 중 마지막 장에 장첩된 <고죽>에는 다섯 방의 인장이 찍혀있다. 선생의 아호와 봉호, 자를 비롯하여 [의속醫俗]이란 인장이 찍혀있는데 바로 소동파의 시에서 비롯한 인문이다. 동파 소식은 북송의 대문호이자 당송팔대가 중 일인으로 중국의 문예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대 없이 거할 수 없다는 뜻으로써 선비가 삶을 대해야하는 자세를 읊었으니, 그 시가 다음과 같다.

밥 먹는 데 고기야 없어도 되지만        可使食無肉
거처지에 대나무 없이 살 수 없네        不可居無竹
고기 없으면 사람이 야윌 뿐이지만        無肉令人瘦
대나무 없이는 사람을 속되게 하니        無竹令人俗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人瘦尙可肥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다네        士俗不可醫
옆 사람이 이 말을 비웃으며        傍人笑此言
고상한 듯하면서도 어리석다 하누나        似高還似癡
대를 대하며 고기 또한 먹을 수 있다면  若對此君仍大嚼
세상에 양주학이라는 말이 어찌 있겠나  世間那有揚州鶴

양주학이란 중국의 고사에 전하는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어떤 이가 양주라는 지역의 벼슬이 되어 십만 관(貫)의 돈을 허리에 차고 학을 타고선 하늘로 오르고 싶다 하였는데, 부귀공명을 모두 누리고는 신선놀음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내었다. 이는 인간세상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헛된 욕망, 이룰 수 없는 욕심을 뜻하는데 소동파는 이를 대나무와 고기를 함께 취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그만큼 대의 참 뜻을 알고서 그를 대하기가 힘들다하는 것일까.

 

<묵죽도> 조희룡 · 국립중앙박물관

매화로 이름을 떨친 우봉 조희룡은 양주팔괴 중 한 명인 판교 정섭에 대나무를 배웠음이 그의 문집에 전해진다. 그러한 실력을 유감없이 펼친 것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하는 <묵죽도> 연작에서 볼 수 있다. 여덟 폭의 각기 다른 바탕에 대나무의 다양한 모습을 다채롭게 그려냈고, 각 폭마다 구성과 배치를 달리하여 생동감을 더했으며, 또한 폭마다 화제를 덧붙여 운치를 더했다. ‘옛 법에 있지 않고, 내 손에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옛 법과 내손 밖에 있지도 않다.’는 제시로써 그 의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대나무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 가장 배점이 높은 과목이기도 했다.

 

<설죽> 유덕장 · 간송미술관

우리나라의 이름난 묵죽화가로는 이정 외로도 앞서 소개한 조희룡과 신위, 심사정, 강세황 그리고 수운 유덕장(柳德章, 1675~1756) 등이 있다. 이정, 신위와 더불어 조선 삼대 묵죽화가인 유덕장은 탄은의 묵죽화풍을 계승하여 조선후기 제일가는 묵죽화가로 꼽힌다. 그가 그린 이 <설죽>도는 사군자화 중 드물게 채색으로 대를 표현한 것인데, 눈 맞은 대나무의 푸르름을 더욱 생기 있게 표현한 절품이다. 눈 오는 차디찬 겨울에도 여여히 푸르른 대나무의 특징을 여느 작품보다 잘 그려내었다. 왼편 위에 써 놓은 관서로 팔순을 앞둔 노년기에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고, 여타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높은 완성도로 화가의 득의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설죽>도와 같이 푸른빛으로 대를 그린 작품이 있으니, 강세황이 그렸다 전해지는 <청죽>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표암 강세황은 산수, 인물, 화조에 두루 능통하였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사군자화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난과 대나무가 뛰어나 스스로 즐겨 그려 전하는 작품이 다수이다.

<청죽> 傳강제황 · 국립중앙박물관

 

필자는 끝으로 탄은 이정이 그려낸 네 작품의 걸작을 소개하려 한다. 다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 유럽과 미국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그리고 우리네 묵죽화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 그것이다. 먼저 화정박물관에 소장된 <우죽>은 비를 맞는 대를 그려낸 작품인데, 비 맞는 대나무를 그린 우죽 중 가장 강인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여느 우죽도와 달리 비를 맞아 쳐져 있음에도 끝으로 시원스레 뻗은 가지가 대의 곧은 성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우죽> 이정 · 화정박물관

필자가 빠리의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가 가장 놀라고 반가웠던 적이 있으니, 바로 이 탄은의 <석양우죽>을 마주했을 때이다.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탄은의 작품이 여기 유럽에 있는 것도 놀라웠거니와, 높은 작품성과 특별한 장황 매무새 등 머나먼 타국에서 이와 같은 작품을 만난 것에 그 자라에서 쉽사리 발을 띌 수 없었다. 이 작품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작품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전해진다. 바람 맞는 대를 그린 풍죽으로, 기메박물관이 소장한 작품과 같이 전서체로 <석양풍죽>이라 제목이 써 있고 아래에 제시를 쓴 글이 함께 장황되어 있다. 이는 앞의 작품과 달리 장황을 따로 한 것으로 보여진다. 두 작품에서의 ‘석양石陽’은 탄은 이정이 석양정이란 작호를 받았다가 후에 석양군으로 봉해진 데서 비롯되었다.

<石陽雨竹> 이정 · Musée Guimet | <石陽風竹> 이정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필자의 마음속에 가장 오롯이 그리고 꼿꼿이 기억되는 대는 이 <풍죽>이다. 처음 완상할 당시 가슴에 휘몰아치는 감격과 저 바람을 이겨내는 대의 자태, 마치 탄은 이정이라는 어른을 실로 뵙는 듯한 감회에 몇 번이고 전시장을 찾았었다. 이 <풍죽>도는 단순히 바람 맞는 대를 표현함을 넘어, 마치 바람이 고난과 역경이오 대는 그를 꿋꿋이 이겨내는 군자의 기개와 같이 굳건한 모습으로 우뚝하니, 탄은은 이 하나의 회화로써 우리에게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부드럽고 우아한 필치 또한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앞서 살펴본 작품들과 같이 일부 대를 옅게 칠하여 입체감을 주었고, 후면의 대가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본대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이는 대륙이나 열도의 묵죽에서도 찾기 힘든 절품 중의 절품이다. 필자는 이 <풍죽>을 한국인이라면 필히 실로 감상해야 할 그림 중 하나이며, 마땅히 <삼청첩>과 함께 국보로 승격되어야 할 작품이라 생각한다.

<풍죽> 이정 · 간송미술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은연히 피어나는 매화, 메마른 땅에서 오롯이 향을 발하는 난, 서리치는 가을에 홀로 강직히 피어나는 국화 그리고 사시사철 꼿꼿이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 梅·蘭·菊·竹, 사군자의 뜻이 이와 같다. 이로써 우리네 아름다움의 첫 주제인 ‘사군자, 선비의 향기’의 기고를 마치며 독자 여러분에 매난국죽의 그 절개와 향기가 널리 닿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글 三樂(삼락) 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