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이 있다. 동양의 사상을 토대로 하되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를 한데 접목시키자는 이론으로, 근대로 접어드는 시대에 주창된 사상이다. 이는 또한 문화와 과학을 아울려는 오늘날에도 가장 이상적인 이념이지 아니한가 생각한다. 만약 진실로 동도서기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발달된 문명이 있을련가? 그러한 이념의 실천, 그리고 실생활에서의 적용을 통해 인류의 삶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자 그 첨단의 학문에 가장 앞서 통찰하고 탐구 중인 한인 과학자들이 여기 오스트리아에도 여럿 있다고 한다. 그 중, 빈의 St. Marx에 위치한 Vienna BioCenter에 찾아 성진우 연구원을 만났다.

Vienna BioCenter에 위치한 연구소

 

Q. 안녕하세요?! 박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생명과학을 전공한 이학박사 성진우입니다. 현재 Vienna BioCenter 소속의 IMBA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저는 일찍이 박사님께 설명을 들었습니다만, ‘생명공학’이란 단어보다 ‘생명과학’이란 단어가 더 생소하게 들릴 한인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전공하신 생명과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저는 자연과학(이학)을 전공했는데, 많은 분들이 생명‘공학’이라고 말씀하셔서 가끔 속상할 때가 있어요. 둘은 Pure science와 engineering의 차이로 생각하시면 편할 거예요.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을 발견하여 이해하는 학문이고, 공학은 그 원리를 응용하여 실생활에 적용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수학 물리 생명과학은 자연과학이고,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등은 공학인 것이죠.

 

Q. 그럼 어떤 계기로 생명과학부에 진학하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셨나요?

제가 고등학생 때, 과학영재교육원이 신설되어 경북 각지에서 각 과학 분야별로 10명씩 선발하여 합숙하며 심화교육을 받을 수 있던 기회가 있었어요. 그걸 듣고 ‘꼭 가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엔 화학분야로 지원을 했었어요. 그런데 경쟁률이 너무 세서 그 10명안에 못 들어 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마감 직전에 생물분야로 지원학과를 바꾸게 되었고, 그렇게 1년간 심화교육을 거치며 여러 경시대회에서 상을 수상하다보니 생물분야에 깊은 관심이 생겨 결국 대학도 생명과학부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이력에 대한 욕심이 컸었던 것 같은데, 욕심 때문에 제 평생 전공 방향이 결정된 셈이니 역시 인생 몰라요.(웃음)

대학교 1학년 수업시간엔 ‘발생학(Development)’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했어요.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진 하나의 수정란으로부터 각기 다른 모양을 갖고 다른 기능을 하며 온갖 조직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처음엔 똑같이 출발했는데 어떤 세포는 뇌가 되고 어떤 세포는 뼈, 근육이 되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그렇게 신기하기에 잘 연구되어 있을 법도 한데, 연구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조직이 분화하는 원리는 아직까지도 명확히 연구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발생학에 대한 흥미 그리고 도전의식 때문에 이 분야를 공부해야겠단 결심을 하게 됐어요.

 

Q. 우연찮은 계기로 생명과학이란 학문에 깊이 빠져 인생의 방향까지 정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생명만큼 신비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싶어요. 공부하다 보면 정말 신기하고 궁금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렇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새로운 가설을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또 그걸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실험을 설계하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론을 내 손으로 써 간다는 쾌감은 정말 큰 것 같아요. 물론 대부분 시간은 내 생각이 헛소리였단 걸 깨달으면서 보내지만요.(웃음) 도중에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학자로서 나름의 족적을 남기고자 열심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학적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껴 열심히 해왔던 것 같아요.

 

Q. 오스트리아로는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되었나요? 현재 계신 연구원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사실 처음부터 오스트리아를 염두에 뒀던 건 아니에요. 막연히 미국, 영국 같은 영어권 나라는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사람이 겪을 스트레스가 너무 클 것 같아 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유럽의 연구소를 찾아 봤었어요. 제가 지원했던 연구실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Utrecht) 라는 곳에 있었는데, 인공 장기 연구로 상당히 유명하던 곳이었어요. 그 연구소에 지원을 하고 인터뷰에 합격한 후 네덜란드로 가기 전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 연구실의 보스가 지금의 연구소(IMBA)로 지원을 해 옮기게 되었고 결국 저도 비엔나로 따라오게 됐던 거죠. 사실 전 비엔나로 오게 돼서 정말 좋았어요. 클래식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과 예술의 도시인 비엔나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었죠. 또 유럽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잖아요. 그간 변변한 외국여행 제대로 못 해봤기에 정말 설렜어요.

연구실 보스(PI)의 자택에서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그런데 여기서 일하게 된 이후로 이곳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점만 가지고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Vienna BioCenter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와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생명과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간’이에요. 생명을 다루고 연구하는 일이다 보니 연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곳은 제 시간을 오직 머리를 쓰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해 줘요. 각 분야별 지원실에서 수많은 테크니션들과 스텝들이 ‘머리’가 아닌 ‘손’이 필요한 연구 진행을 도와주죠. 어찌 보면 과학의 변두리에 있다 싶었던 오스트리아로 왜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오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됐달까요.

여태껏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연구소가 얼마나 좋은지 알았으니 이제 연구소 바깥 생활이 어떤지도 알아볼 차례인데, 요사이 바이러스 때문에 여태 휴가 한번 못쓰고 빈에만 있어서 너무 아쉽네요.(웃음)

 

Q. 그렇군요. 그럼 현재 계신 연구실과 연구 분야에 대해 좀 더 소개 부탁 드려도 될까요?

요약하자면, 인공적으로 배아를 합성하고 그 인공 배아를 이용해 임신 시기 엄마와 아기 간의 어떠한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아기가 발달하는지 관찰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배아’란 제대로 장기가 발달되지 않은 정말 초기 단계의 아기이기 때문에, 어린 배아의 줄기세포는 어떤 장기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요. 많은 분들이 15년 전 황우석 교수 사태 때문에 ‘배아줄기세포’라는 말에 익숙하실 거예요. 어쨌든, 실제 배아와 똑같은 인공 배아를 만들려 노력함으로써 실제 배아가 어떤 원리로 성체를 만들어 나가는지 알 수 있고, 또 연구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그리고 난임,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희망을 전해 드릴 수 있는 연구 분야이기도 합니다.

 

Q. 계신 연구소에서 가글을 통한 코로나 진단키트도 개발했다 들었는데, 한국 과학자들이 큰 기여를 하셨다고요?

솔직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론적으론 모두가 2,3주간 동시에 자가격리 한다면 금방 사라질 질병인데, 제가 사람의 행동심리를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 같아요. 생물정보학을 전공하는 지인은 최소 2년을 예상하기도 했어요. 여하튼, 연구소 내에서도 한국의 초기대응이 좋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모든 한국인 연구원들이 모여 한국의 방역지침을 영어로 번역했었어요. 한국말로도 어려운 단어로 덮힌 40여장 분량이라 고생 좀 했지요.(웃음) 이를 바탕으로 진단키트를 새로 개발했는데, 생리식염수로 가글하여 튜브에 뱉어 담으면 연구소 연구원들 중 자원자로 이뤄진 전담 팀이 유전자 검출 및 증폭을 통해서 바이러스의 유무를 검사하는 방식이에요. 연구소에선 일주일에 2번 검사하기를 권유하는데 원하면 매일 검사하는 것도 가능해요. 하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타액/호흡기로 전염되다보니 공공장소에서 가글하긴 힘들기 때문에, 연구소에서도 가글은 집에서 해오길 권장합니다. 훨씬 간편하고 빠른데도 한국이나 여타 국가들의 진료소에서 이 진단키트가 흔치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 인 것 같아요.

▲ 가글을 이용한 코로나 진단키트

 

Q. 앞서 전해 듣기로는, 박사님께서 진행 중인 연구가 ‘착상 시기의 아기와 엄마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진행 중이신 연구나 작성하신 논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잠시 줄기세포 관련 연구 흐름에 대해 먼저 말씀 드릴게요. 2004, 2005년에 발표된 황우석교수의 체세포복제 형식 ‘배아줄기세포’는 2006년 일본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C)’ 등장으로 바로 묻혀 버립니다. 신야 교수는 난자 공여 등 윤리적인 문제없이, 피부섬유세포에 특정 물질을 처리함으로써 줄기세포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던 것이죠. 이 공로로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현재도 한국에선 이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의학적용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유도 만능 줄기세포도 단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이전 피부섬유세포의 특징이 일부 남아 있기에 완전하게 배아줄기세포를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10년간 ‘올가노이드(organoid)’라는 연구가 각광 받고 있어요. 올가노이드는 원하는 조직의 줄기세포를 채취하여 실험대에서 3D로 배양하며 만들 수 있는데, 실제 생체 조직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자랄 수 있는 것을 뜻해요. 즉 ‘인공 미니 장기’인 셈이죠. 현재까지 대부분의 장기, 즉 대장, 신장, 간 등등 심지어는 뇌 까지도 올가노이드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수년 전, 지금 저의 보스는 ‘하나하나의 장기가 아니라, 그 장기를 만들기 전의 어린 배아로도 올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럼 이 인공 배아는 언젠가는 장기를 만들게 되니까요.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인공배아 합성에 성공을 했고, 지금 저는 그 인공 배아가 실제 아기처럼 모체에서 발달할 수 있게끔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기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선 아까 말씀드렸듯이 엄마와 아기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해요. 감정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생리적이고 화학적인 부분도요. 현재는 배아가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 연구가 마무리 단계인데, 이후론 아기의 옹알이를 들은 엄마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들어보고자 해요. 아직까지 인공 배아의 발달이 완전치 않아서 의학적 치료 적용은 멀었지만, 또 모르죠. 언젠가 인공배아에서 실제 아기가 만들어 지는 날 제가 노벨상 받을 수 있을지. (웃음)

 

Q. 한편으론 배아로 실험과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에서 윤리적 논쟁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한국이나 유럽에서는 어떠한 자세로 그를 대하는지요?

여기 유럽에선 배아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한 만큼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먼저 인간 인공배아의 경우, 실험대에서 키울 수 있는 상한 시기를 정해놓아 정말 인공인간이 태어나는걸 절대 허용하지 않죠. 주 실험동물인 쥐에는 이런 규제가 없지만, 인간을 대할 때 못지 않게 복지에 매우 신경을 씁니다. 이를테면 실험동물의 크기에 따라 필요한 생활공간 면적을 정하고 심지어 장난감까지 마련해 두죠. 쥐를 비롯해 실험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적과 근거가 분명해야 하며,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에 각각 아이디가 등록되어 있어 적법한 허가절차 없이는 실험을 할 수 없게 해놓았어요. 그렇기에 정확한 계획을 하게 되고, 이는 곧 실험하는 동물의 수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져요. 반면 한국은 배아/줄기세포 분야의 변두리에 있어서 그런지 동물실험 윤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형식적인 절차로 실험을 승인하고, 후속관리는 거의 없다시피 해요. 때문에 한국에서 의미없이 죽어나가는 동물들이 많은데, 이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포스텍(Postech, 포항공대)의 개구리동상 아래에는 ‘Theories come and theories go. The frog remains. In memory of their sacrifice…’ 이라는 문구가 있어요. 실험으로 희생된 수많은 개구리들이 있었고 그 고귀한 생명의 대가로 인류의 과학문명이 발전했다는 말을 전하려는 목적이죠. 다만 이것을 ‘인간을 위해서라면 너희는 죽어도 된다’ 라고 변질되지 않도록 적합한 윤리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유럽, 과학선진국 간의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과 시각의 차이에 대해 말씀하고 싶으시다 하셨습니다.

앞에서 공학과 자연과학의 차이를 잠깐 말씀 드렸는데요, 한국은 공학에 투자가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요. 소위 돈 안 되는 연구는 많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예를 들어 항암 혹은 줄기세포 치료제 등 당장 의학에 적용되는 분야가 아니면 연구비를 따기가 어려워요.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발생학은 생명 탄생의 원리이자 근본이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그냥 돈 안 되는 연구 중 하나일 뿐이죠. 한국엔 이렇듯 배아, 태아로 연구하는 곳이 거의 없기에 더 공부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과학 강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있어요. 그런데 약 20,30여 년 전 부터 스페인, 스위스,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등의 나라에서 기초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시작했어요. 그 투자라는 게 단순하게 실험비용만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연구에 최적화된 내적/외적인 환경, 어린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과학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 또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을 포함하죠. 한국은 결코 과학에 대한 투자를 적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금액으로는 오스트리아에 비해 GDP 대비 2배 가까운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 시스템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여기서 다 밝히긴 힘들지만, 어떻게 돈을 쓰는 게 효과적인지를 이곳에 지내면서 확실히 느끼고 또 배우고 있어요. 줄기세포 및 발생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발생학 불모지인 한국에 돌아가 여기서 보고 배운 것을 전해주고 한국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싶지만,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과연 한국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연구비와 시간, 필요한 기계, 테크니션, 지원팀 등등. 이 중 한국에서 젊은 과학자가 해결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안타깝죠.

인프라 차이 이외에도 전반적인 분위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유럽의 연구소는 휴게 및 토론 공간이 엄청 많습니다. 모든 층에 휴게 소파 및 주방, 테이블이 있고 발코니엔 기타와 짐볼, 체스게임까지 준비되어 있어요. 연구실 사이사이에 커피 한 잔 같이 하면서 편하게 얘기할 공간이 여기서는 정말 흔해요. 심지어 코로나시기 이전에는 매주 금요일 ‘Beer hour’ 를 열어 연구소의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 모여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 줬었어요. 그렇게 생각을 교류하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거겠죠. 또 유럽은 협업을 즐겨 해요. 나라간의 경계가 크게 없어서 그런지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며 아이디어 공유합니다. 우리 연구팀이 가진 장점, 그리고 저쪽 연구팀이 가진 장점을 합하면 당연히 훨씬 더 좋은 논문이 빠르게 나오겠죠? 그렇게 여기저기 문어발처럼 얽혀 있어서 진척이 빠르게 되더라구요. 한국 연구소나 학교는 휴게 및 토론 공간이 많지 않고 아이디어 공유 및 토론에 소극적이에요. 한국 연구팀 역시도 협업을 종종 하지만 대부분은 국내 협업이라 훨씬 뛰어난 전문가들이 많은 외국 연구실과 협업할 기회를 놓치는 게 안타까워요. 가까운 미래에는, 외국에서 배워간 젊은 과학자들이 한국에 자리 잡고 이제 분위기를 조금씩 바꿨으면 해요.

휴게공간에서 연구원 동료들과 함께

 

Q.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공간도 연구소라는 느낌의 분위기보단 자유롭고 평범한 휴게공간으로 보여집니다.

네, 여기선 사소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언제든 편하고 자유롭게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휴게공간을 조성해 놓았어요. 작은 부분이지만 이런 외적인 환경 또한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를테면 공간의 사이사이에 넌지시 화두를 던져 놓기도 했는데, 저기 보시면 큼지막하게 ‘What if god was wrong’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전 무교지만, 아무래도 여긴 대부분이 크리스천이기에 처음엔 이걸 보고 정말 괜찮나 싶었어요. 신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지만, 신이 절대적으로 옳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이니까요. 그런데 요즈음 그 의미를 조금씩 느끼고 있어요. 만물의 창조주, 우리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분을 신으로 생각 한다면, 인공으로 생명을 만들고 그 생물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는 우리 연구원들도 어떤 의미에선 신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갈 수도 있는 걸까요.

인터뷰를 진행한 원구소 내 휴게공간

다만 저는 저 글귀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어요. ‘신이 우리의 생각과 열정까지 제한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다양한 연구를 하며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결국은 신이 계획 해놓은 모습이 틀린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라는 뜻으로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진짜 ‘신도 예측하지 못 할 것 같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번뜩이는 걸 밝혀내야 겠지만요.(웃음) 그만큼 번뜩이는 연구 성과와 과학 이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 공학 분야도 중요하지만 기초과학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했으면 해요. 당장 분위기를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김연아라는 인물이 나온 이후 김연아 주니어들이 나오고 그 분야에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졌듯, 언젠가 특출난 천재 한 명이 과학이란 분야의 생태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 과학계는 천재와 영재 육성 방법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어요. 순수학문과 기초학문에 더 중점을 두어 근시안적인 따라하기가 아니라 기초과학자를 믿어주는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차후 우리나라에서도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꿈만은 아닐거에요.

 

Q. 이후로 박사님께서 연구하고픈 분야나 나아갈 방향은 어떠한지 여쭙습니다.

현재 아기가 엄마 뱃속에 착상하는 시기를 전후해서 이루어지는 서로의 교감과정을 연구하고 있어요. 그 후엔 배아에서 장기가 하나둘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공부하고자 합니다. 모든 장기와 조직은 하나의 공통 조상 세포로부터 만들어 지는데,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특정 자극을 통해 근육이 될지 뼈가 될지 혹은 지방이 될지가 결정돼요. 그래서 배아의 발생 과정과 원리를 충분히 이해한 후에 이것을 성인에게도 적용시켜보고자 해요. 예를 들어 조직 분화 과정에서 세포가 받는 그 자극들을 다른 방식으로 컨트롤 하면 지방으로 연골을 만들고 허벅지 근육을 심장근육으로 바꾸는 일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생각해요. 즉, 환자 몸에서 일부 세포를 끄집어 낸 후, 내가 필요한 장기의 세포로 변환시켜 다시 환자에게 이식해 주는 거죠. 물론 쉽게 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기초과학이 쓸모 없고 과학자들의 지적인 허영심으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의학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회에 충분히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공부하고 배울 수 있었던 건 한국 사회에서 받은 것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기에, 제가 받은 만큼 다시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Q. 끝으로 한인 여러분께 전하고픈 말씀 있으신지요?

외국에 나온 후로, ‘한국인 박사는 혼자 두어도 항상 제 몫 이상을 해 낸다’ 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어요. 이건 비단 과학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거라 생각해요. 각지에서 각자의 일과 생활을 하시는 모든 한국인분들, 코로나로 인해 많이들 지쳐 있으시겠지만, 저희는 그런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에서 훌륭한 재능을 갖고 왔다는 자부심과 함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