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원로 1세대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오스트리아에 간호사로 파견되어 현재도 한인원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한인사회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 중 1972년 비엔나에 간호사로 파견되어 현재는 Burgerland 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원로 김정중 여사를 만났다.

1972년 8월 28일 비엔나의 땅을 밟았다고 기억을 더듬은 김정중 여사는 Allgemeine Krankenhaus 에서 27년간 간호사로 근무하였고 1999년 정년퇴임을 하였다. 전주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의 적십자 대학교에서 수학, 충주 도립병원에서 2년간 간호부장으로 근무한 김정중 여사는 그 당시 지원을 통해 비엔나에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고.

“저희 집은 은행가였던 큰언니를 제외하고 모두 교육자 집안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교장직을 역임하시기도 하셨지요. 처음에 간호로써 봉사하며 살겠다고 의견을 밝히자 집안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비엔나로 파견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많이 반대를 하셨습니다.”

여고시절부터 음악의 고장으로 손꼽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 김정중 여사는 지원을 통해 비엔나 행에 올랐다. 그 당시 어학을 충분히 공부하고 나온 편이 아니어서 현지에서 어학공부를 하며 간호일을 시작한 김정중 여사는 독일어 공부 덕에 현재의 부군인 박부식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고. 당시 박부식 박사는 유학장학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김정중 여사보다 2달가량 먼저 비엔나에 도착한 상태였다. 독일어 공부를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은 46년째 단란한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있다. 장남은 의과대를 졸업, 베를린에서 Facharzt로 5년간 근무하다 현재는 오토 바그너 슈피탈에서 정신과 Oberarzt 로 재직중이며, 차남은 비엔나대학에서 동양학과 (한국어 학과) 조교직을 역임한 후 현재는 타이완에서 컴퓨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고. 김정중 여사는 비엔나에 살면서 가족의 화목과 두 아들이 모두 잘 성장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덧붙였다.

“처음 파견 간호사로 비엔나를 도착했을 때에는 계약이 2년이라, 파견근무 후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비엔나 생활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답니다.”

김정중 여사가 처음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할 당시에는 간호사 근무가 무조건 2교대, 하루 12시간을 근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또한 시스템이 한국과 차이가 있어 차별대우 역시 없지는 않았다고. 그러나 쉽지 않은 여건 가운데서도 김정중 여사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근무를 해 나갔다. 현재의 간호사 근무시간은 ‘2교대 선택’ 이 가능하여 과거보다는 훨씬 복지가 좋아졌다고.

 

현재 김정중 여사는 부군인 박부식 박사와 함께 Burgerland 에서 89년 부군이 개업한 약국에서 비엔나와 Burgerland를 오가며 업무를 하고 있다. (Bahnstrasse 16) 비엔나 생활에 하루하루 만족하며, 오스트리아 행을 선택함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전한 김정중 여사는 마지막으로 본인에게도 과거 여러가지 힘듦과 문제들이 많이 닥쳤으나, 그것들을 잘 견뎌나가면 분명히 잘될것이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 허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