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 – 빈 국립음대 현악과 부교수

지난 2016년, 빈 국립음대에서 한국인 조교 발령 소식에 이어 2020년 빈 국립음대의 현약과 부교수로 한국인 임명 소식이 전해졌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상희씨. 2007년 오스트리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정상희 연주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정상희씨도 어릴때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고. 만 3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정상희씨는 오히려 피아노는 어릴 때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기억한다.

“어릴 때 부터 자연스레 피아노라는 악기를 접하게 되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피아노 부터 시작했는데, 어릴 때는 피아노를 연습하기 싫어했던 기억이예요.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유치원 친구들이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하는 모습에 엄마를 졸라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는데, 신기하게도 피아노는 그렇게 연습하기 싫어했으면서 바이올린은 연습하기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어머니가 전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바이올린과의 첫 인연을 접하면서 서울예고에 진학한 정상희씨는 만 17세이던 2007년, 일생 일대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유럽과의 첫 인연을 시작하게 된 것.
2007년 한국에서 대학을 진학할 지, 유럽으로 유학 과정을 밟을 지 고민 하고 있던 여고생에게 우연히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고, 한달여 되는 기간을 독일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은 어린 정상희씨에게 매우 신선한 경험이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마스터 클래스가 인생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로 인해 유럽 문화를 생활로 접하면서 매우 반해버렸었어요. 유학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서울에서 열렸던 빈 국립음대의 진코프스키 교수님의 마스터 클래스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인연을 통해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독일에서 시작된 마스터 클래스, 그리고 비엔나에서의 학업을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어떤 곳일까. 연주자이면서 교육자인 그녀에게 비엔나는 정말 교육적으로도, 연주가에게도 최상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고. 그녀가 겪은 비엔나는 국적과 배경에 상관없이 “실력” 으로 평가받는 분위기이며,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이라는 타이틀 답게 공연장에서 항상 수준급의 공연들이 이루어 지는 곳이다. 공부하는 음악도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자율적인 선택이 주어져 본인이 뜻을 찾고자 한다면 길이 열리는 곳이지만, 그 속에서의 단점은 독일의 음악 시장보다 규모가 작고 선택이 한정적인 부분이 아쉽다고.

 

그러나 정상희씨는 비엔나에서 공부를 마치거나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면 분명히 비엔나를 중점으로 유럽 어느 국가에서든지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최고의 발판이 되어 줄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전달했다.

2016년부터 빈 국립음대에서 사사 받은 진코프스키 교수의 조교로 취직해 교육자의 캐리어를 시작한 정상희씨는 학생이 아닌 교육자라는 다른 방향으로도 학교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고. 그러다가 2019년, 빈 국립음대의 영재반 부교수 자리를 뽑는 공고를 접했고 마침 2020년 조교 계약이 끝나가던 정상희씨는 새로운 기회에 도전해 보게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30년 이상을 근무하셨던 Leonid Sorokow 교수님의 후임자를 뽑는 공고를 접했어요, L. Sorokow 교수님은 교육자이시면서 유명한 모스크바 비루투오지 그룹에서도 활동하시는 연주자셨는데 그 후임을 뽑는 자리였어요. 마침 조교 계약도 끝나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던 차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준비하게 되었지요. 1차 전형에서 6명을 선발한 뒤 2019년 12월 연주 20분과 공개 레슨을 진행, 총 90분간의 2차 오디션이 진행되었는데, 하늘이 도운 덕인지 그날 제게 공개 레슨을 받은 두 학생 모두 한국 친구들이었어요. 한창 긴장하던 중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2차 까지 치러진 오디션의 결과, 2020년 정상희씨는 현악과의 부교수로 빈 국립음대와 인연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현재 현악과의 유일한 동양인이며 한국인 부교수로 재임중인 정상희씨. 그녀의 부교수 임명 소식은 한국 음악계를 비롯, 현지 교민들에게도 큰 기쁨과 이슈가 되었다.

 

현재 그녀는 영재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교로서 대학생들을 가르쳤던 것과 또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어린 아이들과의 가르침은 또다른 배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에도 청소년기의 배움이 제 연주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만 6세부터 18세까지의 배움은 앞으로 연주자로서 활동하는 음악도들에게 인생의 초석이면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육체적으로는 지속적인 트레이닝과 코칭으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된 테크닉을 익혀야 하며, 정신적으로는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 연주자로서의 매너와 자세를 습득하는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나 “음악가로서의 목표”를 정립시켜 주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이 때 단 1,2년이라도 허투로 보낸다면 나중에 그 시기를 메꾸기 위해 몇 배 이상의 방황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청소년기에 엄한 교육자 아래에서 오랜 기간 교육을 받았다는 정상희씨는 그 이후 무대에서 “그때의 긴장감”을 많이 느꼈노라며, 그 심적인 부담감과 고생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래서 나이 어린 아이들의 초석을 함께 닦는 데에 큰 보람을 느끼고 본인도 행복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정상희씨의 일정은 어떻게 될까. 당분간은 교육자로서의 활동에 몰두할 예정이라는 그녀.

올해 초 코로나 사태가 발발되면서 수업이 없는 날이 많아진 것은 아쉽지만, 그 기회도 학생들에과 어떻게 하면 가르침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겠다는 그녀는 이제 막 교수직을 시작하면서 의욕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주기 위해 학생들이 배우는 곡을 같이 연습하는 등, 본인에게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많아져 즐겁다는 정상희씨. 마치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한다.

“많은 재능있는 한국 친구들이 빈 국립음대의 영재 코스에 참석하게 되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도와 함께 발전해 나가면 정말 뿌듯할 것 같습니다. 제 클래스를 통해서도 학생들 하나하나에 맞춰 교육 플랜을 짜고, 목표를 정해 가르치다 보니 오히려 수업이 없는 날에도 더 공부를 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 역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가르칠겁니다.”

 

글 허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