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 송형훈 세례자 요한 비엔나 한인성당 주임신부 –
사제로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미사를 봉헌한 후 교회문을 나서며 신자들과 마주할 때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 만나 친교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깊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아 주교 회의에서 본당을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라고 정의했다. 신자들이 성사에 참여하고 공동체 안에서 말씀으로 성장하고 서로 친교를 나누는 모습이야말로 교회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신자들과 나누는 이런 친교의 기쁨이 한동안 사라지고 있다.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미물 때문에 사람들은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일상 생활을 해야하며, 심지어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옛일이 되어 버린 초유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사람과의 만남을 경계하고 접촉을 두려워해야 하는 생활로 바뀌어 거리도, 광장도, 시장터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미물 중의 미물인 이 작은 바이러스가 인간관계를 단절시켜 외롭고 우울한 사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손을 맞잡고 흔들며 기쁨을 나누는 일상(日常)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사태가 지나가더라도 예전과 같은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설령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환경 파괴가 자초한 지구의 온난화로 미래에는 기후 변화에 의한 각종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새롭게 출현할 다양한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거나 동거하며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오늘부터의 세계」라는 책에서,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와 환경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인간의 문명이 번성하면서 도리어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이 잇따라 등장할 것이라고,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종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까지 경고한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사람들이 서로 직접 만나는 ‘접촉(대면)문화’가 약해지고 ‘비대면문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회사나 공공기관의 경우 특정한 장소에 모여서 업무를 보던 ‘공간 중심’에서, 자택이든, 야외에서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중심’의 생활로 점차 변화될 것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송, 원격수업, 원격상담과 진료 등이 일반화되고,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SNS를 통한 각종 비대면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의 기술이 사회 전반에 크게 활용되면서 어쩌면 멀지않은 미래에는 사이버 공간의 가상 현실이 실제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체험되고, 인공 지능과 로봇이 결합되어, 매체에서 다루던 소설과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시대가 되면 상호 의존적인 관계성이라는 인간의 속성이 가상 현실 속에서 해소됨으로써 공동체 삶이 붕괴될 것이다. 인간관계의 소통 역시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줌으로써 인간과 인간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점차 ‘개별화’된 삶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종착점은 어쩌면 생명 없는 기계들과 가상의 것들만 존재하는 영혼 없는 사회와 같을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의 사회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달아 인간관계를 대신해 기계 장치들과 감정 교류를 나누는 사회가 되다면 아마도 인간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감정은 외로움.. 소외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을 바이러스 감염증이 온 세상에 확상되는 것을 보면서, 창세기의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쳐 죽음을 안기게 된(로마5,12) 성경말씀이 떠오른다. 악도 바이러스처럼 사람에게 감염되어 빠르게 전파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악마는 존재한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마의)유혹은 처음에 가볍게 시작하지만 자라납니다. 점점 커집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전염시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집단으로 확산됩니다. 마지막으로 영혼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실제로 악은 인간의 약한 본성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면서 사람 사이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고 영혼을 병들게 하여 끝내 인간성을 송두리째 파멸시킨다. 악은 인간의 교만, 이기심, 탐욕, 질투, 허영, 게으름 등을 먹이로 삼고 자라는데 이것이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죄악을 범하게 된다. 인간의 죄악은 또 다른 악을 낳으면서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 마침내는 악이 정당화되고 어둠과 죽음의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폐쇄적인 사회체재, 은밀하고 폐쇄적인 유사종교, 폐쇄된 공간에서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악도, 소통이 잘되는 투명하고 열린 사회에서는 힘을 잃지만 은밀하고 폐쇄적이며 어두운 곳에서는 활개를 친다.
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이 확산되고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우리 사회는 빛과 어둠의 행실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차별과 혐오, 거짓 선동으로 사람들에게 분열과 불안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사회에 봉사하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긴급 필요물품을 사재기하고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기꺼이 기부하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사태를 겪으면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과 영혼을 파괴하는 사회의 이런 어둠의 행실들임을 보게 된다. 반대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또한 세상의 소금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부정과 부조리를 막고 우리 삶을 정화해 간다면 더불어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될 것이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19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올해 초 사회의 기업들은 코로나19 피해 최소화에 집중했다. 이후에는 포스트 코로나, 즉 코로나가 끝난 뒤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서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겨준 분명한 교훈은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이 아닌가 한다.
끝으로 이적의 ‘당연한 것들’이라는 노래의 가사로 잠시나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소중한 일들에 감사하고자 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우린 걷고, 친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에 쉽게 여겼죠
금세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글 송형훈 세례자 요한 – 비엔나 한인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