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장로교회 황동두 담임목사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와 있다. 2023년도 어김없이 우리 모두는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 세계 곳곳도 형용할 수 없이 많은 일들로 인하여 바쁘고, 아프고, 힘든 한해를 보냈다. 이처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력투구하여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기를 원하고, 우리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와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새해에 대한 기대함 보다는 불안하고 두려운 미래에 대한 짐을 한가득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날이 많다.

오랫동안 반복된 기대감과 좌절감의 교차경험 때문인지,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인생에 마취제를 투여하듯, 찾아오는 날들을 바라보며 그날이 그날이고, 지난 해와 이번 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단정 짓는 일이 많다. 그러곤 습관처럼 우리 자신에게 말할 때가 많다. 이렇게 말이다. ‘인생이 헛되고 지루하다.’

세상의 모든 광고는 새로운 것이 있다고 계속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공약과 모든 시대의 슬로건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 위대한 역사에 대해서 집착하며, 우리에게 새로움이 없는 인생에 대한 직시보다는,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새로움이라는 영혼의 갈망인지, 죄성의 발현인지 모르는 마음의 끌림으로 우리의 인생을 사로잡고 끌고 간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이렇듯 열심히 살지만 삶에 허무함을 느끼고 살 수밖에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시지프스(Sisyphus)다. 시지프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서 코린토스 시를 건설한 왕이었으나, 영원한 죄수의 화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호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들의 편에서 보면,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할 뿐 아니라, 특히나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점에서 심히 못마땅한 인간으로 일찍이 낙인찍힌 존재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신을 속인 죄로 저승에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했는데,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굴려 울리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매년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해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삶의 헛됨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성경도 있다. 솔로몬 왕이 저자로 알려진 전도서가 그 책이다. 전도서에는 아주 유명한 문구가 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라는 문구는 전도서의 해석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게 할 때도 종종 있으나, 헛된 것을 쫒아가다 넘어진 우리의 인생에 가끔 위로와 격려를 줄때도 있다. 전도서는 마치 삶이 해변의 모래처럼 움켜잡으면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때로는 우리의 이해력을 벗어나 불가사의하고 당혹스러운 일들을 끊임없이 일으킨다고 가르쳐 준다. 그 가르침이 오묘하고 경이로워서 그런지 기독교 성경에는 없어서는 안 될 성경의 66권 중 소중한 한권의 책이다.

 

로드 드레허(Rod Dreher) 작가

끊임없이 헛됨이라는 감정과 사건들과 싸워야 하는 우리는 새로운 일상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두려워한다. 작가 로드 드레허(Rod Dreher)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의 문제는 일상의 삶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허리케인이 불어 닥쳤을 때, 파리에서 한 달을 지내야 할 때나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나 진정으로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구입했을 때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보다는 오늘 하루를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작가의 말처럼, 아마도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지루한 일상, 즉 새로운 일상이 없는 삶을 더 두려워한다. 평범한 일을 하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인생의 멋진 꿈을 좇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C. S. 루이스(C. S. Lewis) 작가

또 한명의 기독교 작가를 소개하고 싶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재밌는 책을 쓴 사람인데, 그 책에서 새것이 없다는 주장의 핵심을 악마의 입장에서 잘 해석한 부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그 책의 주인공으로 선배 악마와 후배 악마가 등장한다. 선배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후배 악마 사촌 웜우드에게 편지를 써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대원수(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는 방법을 충고해 준다. 스크루테이프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에 대해 웜우드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C. S. 루이스 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이제 우리(사탄)가 먹는 즐거움을 골라내고 부풀려 탐식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변화의 즐거움을 골라내 그것을 절대적인 색다름을 바라는 욕구로 왜곡시키자. 이 욕구는 전적으로 우리의 작품이란다.

만일 우리(사탄)의 책무를 소홀히 하면, 사람들은 색다름과 익숙함이 뒤섞인 올해 1월의 눈송이, 오늘 아침의 해돋이, 이번 크리스마스 건포도 푸딩에 만족할 뿐만 아니라 황홀감을 느낄 거야.

어린아이들은, 우리(사탄)가 제대로 가르치기 전까지, 가을이 항상 여름을 뒤따를 때, 도토리놀이가 돌멩이치기로 이어지는 제철 놀이의 순환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맛볼 거야.

오직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할 때에만, 무한한 변화 혹은 리듬과 무관한 변화를 바라는 욕구를 보전할 수 있는것이지.”

이 대목에서 전달하고 하는 핵심을 설명하자면 사탄은 평범하고 오랫동안 변치 않는 것들을 추구하기보다 언제나 새로운 삶과 새로운 목표들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해서 평범함이라는 소중함의 가치를 변질시키자고 하는 이야기의 핵심 대목을 발췌하여 소개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삶이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하나님은 인간이 변화와 새로움을 좋게 느끼도록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다만, 하나님은 마치 우리들의 부모님처럼 우리 인생에도 새로움이라는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반찬만 탐닉하지 않고, 평범함이라는 싱거운 반찬도 우리 인생의 식탁에 올리셔서 조화롭게 즐기게 하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하여 보면, 인간의 죄인된 속성은 항상 어느 한쪽으로 몰두하고 치우치고 중독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렇기에 때로는 우리가 가진 삶에서 어떤 쪽으로 편중된 과도한 집착이 허무를 불러올 때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글을 쓴 이유다. 때로는 우리의 한쪽으로 편중되어진 부정적 시각이 우리의 소중한 삶에 허무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다른 쪽으로 편중된 인생, 즉 인생에 대한 너무 긍정적인 시각 또한 우리 삶을 허무감으로 빠뜨리는 올무가 될 때도 있다.

한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우리의 생각의 방향을 어떤 한쪽으로 치우치고 기울게 해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보기보다, 평범한 삶은 따분함, 지루함, 혹은 헛된 것이라고 둔갑시켜 그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어떤 음식은 오래 씹지 않으면, 그 음식의 풍미와 맛을 깊이 있게 느끼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되돌아보고, 점검해 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의 참 맛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새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 다양한 인생의 계절을 보냈던 우리의 삶을 잘 돌아보길 추천한다. 생각해 볼 때, 지난 한해가 무난하게 평범했던 삶이었다면 ‘평범한 삶 속에서의’ 감사를 더해보고, 너무 고달프고 아팠던 삶의 순간이 많았었다면 ‘평범한 삶 속에서의’ 회복의 삶을 꿈꾸고, 또한 너무 피곤했던 일들이 많았다면, ‘평범한 삶 속에서의’ 활력 있는 삶을 새해에는 소망해 보시길 함께 기대해 본다.

글 황동두 목사


황동두 목사 약력

  • 명덕외국어고등학교 졸업
  • 뉴욕시립대학교(CUNY) 회계학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M.Div
  • Evangelical Church Alliance 목사 안수
  • 총회 특별편목 과정
  • 후암교회 (전도사, 목사)
  • 100주년기념교회 (전임목사)
  • 현 비엔나 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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