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파오 간호사 50주년 (1972-2022)

“오스트리아 한인 사회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막연히 던져본 질문의 답에는 1970년대 오스트리아에 파견된 100여명의 한인 간호사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조차 생소했던 시절부터 열심히 일하며 터전을 일구어낸 그들이 파송된지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또한 재오한인간호협회를 설립하여 한인 사회의 건강증진을 위해서도 여전히 쉬지 않고 있다. 현재 간호협회 8대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천영숙 회장을 만나 파오 간호사의 역사와 간호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60년대 서독 정부가 한국 정부에 간호사 파견을 요청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정부 역시 1970년 초 한국 정보에 간호사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1972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100여 명의 한인 간호사들이 오스트리아에 파견되었다. 정부 차원의 직접 파견 외에도 다른 국가를 거치거나 개인적인 경로 등을 통해 28명의 한인 간호사들이 오스트리아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파견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기초적인 언어 및 소양 교육을 받긴 했지만 인터넷도, 한인 마트도 없던 시절 타국땅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막막했다.

“말을 할 줄도 모르는데 오자마자 바로 근무에 들어갔어요. 정말 깜깜했죠. 그래서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아요. 그래도 6개월쯤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어느정도 알아 들을 수 있게 됐는데 표정도 몸짓도 볼 수 없는 전화로 소통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항상 긴장하던 기억이 있어요. 또 평생 향토음식만 먹고 자랐는데 유럽 음식들이 입맛에 안 맞아서 고생도 많이 했죠.”

생전 처음 본 치즈나 사워크림을 상한 음식인 줄 알고 버리기도 했었다고 천 회장은 웃으며 그때를 회상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도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이곳에 올 때 비행기 표 값을 가불받아 온 처지였기 때문에 중간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꿈도 못 꿨다. 전화도 귀하던 시절이라 매번 항공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지냈다. 그럼에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전문 인력으로 소임을 다한 한국인 간호사의 근면성실과 친절함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한국인 간호사들만 지정해서 찾는 바람에 오히려 일이 더 많아져 바빴다고 한다. 이렇듯 칭찬받는 한국 간호사들의 명성은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우호친선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정을 이루기도 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해 이 땅에 한인 유학생이나 사업인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한인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인 간호사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오랫동안 마련되지 못하였으나 2008년 6월 7일, 김동주 초대 회장을 선두로 ‘재오 한인간호협회’를 발족하였다. 당시 총 68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여 부회장은 이옥심, 총무는 황병진이 맡았으며 오스트리아 협회법에 의거 정부에도 정식 등록되었다.

한인간호협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사회 봉사와 대외 활동, 내부 회원간 친목도모가 있다. 사회 봉사 활동으로는 한인 병원 통역봉사, 무료 건강검진, 한인 체육대회에서의 의료봉사 등 다양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천 회장도 의료 봉사가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한인 의료 봉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전문직이 간호 일이다보니 의료 용어 통역이나 처방을 도울 수 있었어요. 치료가 급한데 언어가 안 통해서 어려운 사람들의 연락을 받으면 가족된 마음으로 두 발벗고 나서 도와줬어요. 또 매년 광복절에 열리는 한인체육대회에서 부스를 설치해서 응급 처치를 돕는 것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기쁘게 참여하고 있어요.”

매년 4월에는 한인연합회가 주최하고 간호협회와 의사협회, 과학자협회가 공동으로 후원하는 무료 건강검진이 있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한인이라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다. 아무래도 병원을 자주 찾기 어려운 타지 생활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언어의 장벽에 대한 걱정없이 점검하고 안심할 수 있다.

대외활동으로는 고국의 대한간호협회 뿐 아니라 재외한인간호사협회와 교류하며 상호 간의 정보 교환 및 제반 사업에 협조하고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 간호사 협회와도 교류를 시작하여 관련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한간호협회를 도와 한국의 간호법 지지서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협회 회원 간 친목도모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매년 1회 정기총회를 열어 봉사활동 뿐 아니라 송년의 밤, 문화 행사 등 다양한 친목 활동을 계획한다. 파오 50주년을 맞은 올해의 행사는 더욱 특별하다. 지난 8월 26일에는 한인문화회관에서 파오간호사50주년 행사를 열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대사관 대사, 한인연합회 회장과 더불어 한국에서 대한간호협회 임원도 직접 참석해 축하를 전했고 오스트리아 간호협회에서도 축사를 보내왔다. 또한 간호협회 50주년 책자를 발간하여 송년회 때 나누어 줄 예정이다. 이외에도 건강 관리를 위한 온천장 방문과 박물관 탐방, 가을 소풍 등의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요즘 한층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면 저절로 애국자가 된 것같이 뿌듯한 느낌이 들어요.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한국은 뉴스에 거의 나오지도 않았는데 요즘 케이팝이나 한국 영화같이 문화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지켜보면서 너무나 자랑스럽지요. 병원에서 일할 때도 시스템 전산화가 시작되면서 컴퓨터가 들어왔는데 모든 컴퓨터가 한국 기업이고, 또 한국 자동차가 다니고 하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1970년대 가난했던 조국을 위해 먼 타국 땅에서 고생하며 일한 재외한인 1세대. 그들의 피와 땀을 거름삼아 발전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게 느껴졌다.

50년 전부터 시작된 간호사들의 한인동포사회건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여성합창단, 국제부인회, 한인문우회, 한인원로회까지 대부분의 한인 단체에서도 한인간호협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한인동포사회라는 나무가 지금처럼 튼튼히 서기까지 한인 간호사들이 가장 큰 뿌리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 최예빈 기자
인터뷰: 천영숙 오스트리아 한인간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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