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맞이한 김충자 여사에게 헌정하는 시집 출간
모두 김충자 여사에게 바치는 시로만 책을 엮어
재 오스트리아 한인엽합회의 편집고문직을 맡고 있는 김운하 원로가 팔순을 맞이하는 김충자 여사에게 헌정하는 시집을 발간했다. 김운하 편집고문은 이미 예순을 맞이한 여사에게 헌정하는 첫 번째 시집과 칠순을 맞이한 여사에게 헌정하는 두 번째 시집을 엮은 바 있다. 이번에 발간한 <다뉴브 연가>는 편집고문이 여사에게 헌정하는 세 번째 시집이며, 장년기 이후의 시들을 위주로 책을 엮었다 전했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활동하며 오늘에도 개인 블로그인 ‘새로운 한국-The New Korea’을 운영하고, 재오한인 편집고문, 재외동포신문 해외편집위원, ‘월간 객석’ 오스트리아 통신원으로도 활동하는 김운하 원로의 곁에서 묵묵히 조력해 온 동반자이자 8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인 김충자 여사에게 바치는 60여 편의 연가는 아흔을 바라보는 김운하 편집고문이 일생 동안 여사만을 바라보며 써 온 시 중의 일부이다. 김운하 편집고문에게 한인들에 소개하는 시 한 수를 청하여 이를 함께 소개한다.
이젠 제일 좋은 것은 당신이 먼저에요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식사 때 마다 당신은 나에게
제일 좋은 부분을 주었어요.
나는 오늘 아침에도
후식을 들 때
단감의 맛있는 부분을 내게 줄 때
눈물이 왈칵 쏟아 졌어요
결혼생활 55년
아! 당신은 이렇게 해왔어요
매번 당신은 이렇게 해왔어요
나는 그 일을 예사로 생각하고
젊은 날엔 당연하다고도 느꼈지요
너무 했어요
지금에야 생각하니
너무 했네요
당신은 매사에
먹을 때 입을 때 어디 갈 때 잠 잘 때
당신은 매사에
제일 좋은 것은 내게 먼저 주었어요
제일 좋은 선택을 내가 먼저 하게 했어요
생각하면 너무 잘 못 했어요
생각하면 너무 잘 못 했어요
아흐!
이젠 제일 좋은 것은 내가 당신에게 먼저 줄게요
후회는 소용없을 거에요
짧게 남은 인생이기에
더 깊게 더 높게 더 넓게
이젠 좋은 선택은 당신이 먼저 하게 할게요
저 영원한 세상에 가서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제일 좋은 것은 먼저 줄게요
내가 꼭 그렇게 할게요
아흐!
나는 지금 울고 있어요.
출판사 소개글
이것은 대한민국 반만년 문화사를 흔드는 조용한 기적이다…
이 책은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바치는 시집이다. 시인 치고 사랑시를 써보지 않은 시인은 드물 것이다. 그런 만큼 사랑을 노래한 시는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책 한 권을 온통 평생 동반자인 한 여인에게 바치는 연애 시로만 가득 채운 순정 시집을 본 적 있는가?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처음이다. 어쩌면 단군 이래 대한민국 반만년 문화사를 흔드는 조용한 기적이다.
한 남자가 여덟 살 때 다섯 살 난 여자아이를 처음 보았고, 커서는 교회오빠였다가 대학 때는 캠퍼스 커플, 그리고 마침내 결혼으로 만나 같이 살면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이르기까지 줄곧 한결같은 사랑을 품고, 그 사랑을 시로 썼다. 젊어서도 썼고, 나이 들어서도 썼다. 이제 9순을 바라보면서도 쓰고 있다. 작가는 서울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신문기자로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조선일보 기자로 10년을 국내에서 일한 다음 주미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미국으로 갔다. 유신을 앞둔 1972년의 일이었다. 군사정권의 압력이 거기까지 뒤따라 건너와서 그를 특파원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는 34살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원치 않았던 디아스포라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미주동아] 편집국장, [신한민보] 발행인 겸 사장을 지내는 한편 조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여러 한인 단체들과 연관을 맺고 반독재 투쟁에 몸을 담았다. 그것은 생활인으로서 불안정과 가난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빈틈없는 반려이자 여러 활동에서 갖가지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동지가 되어주었다. 그는 그런 아내의 60회 생일에 ‘제1 시집’을 100권 만들어 헌정하였다. 그리고 10년 후 칠순을 맞은 아내에게 바치는 ‘제2 시집’을 엮었다. 그러나 책으로 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이번 여든 돌을 기념하는 ‘제3 시집’에 함께 묶었다. 아내에게 바치는 세 번째 시집이 되는 이 『다뉴브 연가』에는 작가의 장년 시대 이후 작품들이 주로 실렸다.
내몽고 땅
초원마을
님은 양치기 여인으로 나타나시네.
몰려오는 마을 사람들
초원에 세운 내 님의 장방을 훔쳐들 보네.
붉은 연지 바른 어여쁜 얼굴
밝은 태양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눈동자
달보다도 더욱 밝네.
해외생활 모두 버리고
내 님과 양 치며 살고 싶네.
매일 매일
연지 바른 내 님의 얼굴
찬란한 금박 물린
아름다운 옷차림
내 님만을 보면서.
나는 내 님의 작은 양 되어
항상 내 님의 몸 곁을 맴도는
내 님의 쓰다듬음에
황홀해지는
그 초원에 살고 싶네.
「내 님은 초원의 양치기 여인」. 중국에 출장 가서 내몽고의 넓은 평원을 보면서 쓴 작품이다. 그때 그의 아내는 미국에 있었다. 지금 그도 아내도 미국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린츠에 몸을 부리고 있다. 여전히 부부는 디아스포라로, 언론인으로 살고 있다. 남편은 발행인, 아내는 편집인이 되어 온라인 뉴스를 만들고, 오스트리아의 한인 회지 발간에도 봉사하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조국은 그에게 ‘국민포장’을 수여했지만 두 사람은 아직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글 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