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있는 풍경] 겨울 연못 – 홍진순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 노이지들러 호수(Neusiedlersee)

 

겨울 연못

홍진순

 

안개의 늪에 내가 누웠다
서걱대는 갈대 소리만 들리는 늪에
미이라처럼 누워
파피루스에 지나간 천년의 꿈을 그린다
오지리와, 아누비스와, 정의의 저울을
분수야, 잠을 깨어 나를 들어 올려라
창공을 맴도는, 매의 힘찬 날갯짓이 들리는 곳으로
살아 숨 쉬는, 꿈틀대는 삶 속으로
네 혼신을 다하여
이 존재의 늪에서 나를 밀어내어다오
한 번만 더 아프게 사랑하고 소멸되리라
마지막,
한 번은, 내 본연의 소리로 울어보고
울음 속에서 터져 나오는 내 심장의 피도
붉음을 보여주리라
앵무새처럼 흉내만 내어야 사랑받을 수 있는
삶의 변두리만 서성대는 긴 그림자의 이방인들
이 어둡고 추운 남의 땅, 얼어붙은 연못
내 뜨거운 생명의 입김으로 녹여주리니
백조야,
다시 돌아와 한맺힌 응어리 통곡으로 씻고
힘찬 자유의 날갯짓을 하렴

 

 

홍진순 작가

 


이 글은 “재 오스트리아 문우회”의 회원님이신 홍진순 작가님의 글입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무단전제 및 변경, 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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