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민들레와 나 – 전헌호 신부

전헌호 신부 / 사진출처 카톨릭 신문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를 발견한 이후 자연스럽게 그것이 자라는 모습을 날마다 관찰하게 되었다. 어떤 녀석은 잎을 여러 장 밀어 올려놓았고, 다른 녀석은 꽃대부터 위로 올려놓고는 그 곁에 가느다란 잎 두 장을 겨우 밀어 올리는 중에 있다. 어떤 녀석은 잎과 꽃대를 동시에 올려놓고는 한숨 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날 경험한 민들레의 모습은 대단히 다양하다. 보통의 땅에서 보통으로 자라서 꽃을 피운 녀석들을 본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은 탓으로 땅에 딱 붙은 모습이지만 기어코 살아내서 꽃을 피우고는 이내 씨앗들을 바람 따라 멀리 날려 보내고 주저앉은 녀석들도 많이 보았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산 중턱 넓은 목장에서 엄청난 길이와 부피로 자란 녀석들을 보고는 “민들레가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라며 놀란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 올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짐작하게 한 민들레를 본 적이 없었기에 요즘 관찰하고 있는 이 녀석들은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철없던 청소년기와 젊었던 날에는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큰 의욕을 내며 열심히 달려온 과정에서 성취한 것은 별로 없고 쓰라린 실패와 상처들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저런 것들을 종합하여 갖게 되는 결론은 인간은 피조물이지 결코 창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없는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응용하여 삶을 오감에 와 닿은 수준을 넘어서 좀 더 깊고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존재인 것이다.

민들레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조물이라는 것은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색할 만큼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유약한 이 민들레가 우리가 곡괭이로도 파내기 힘든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가 그것을 뚫겠다는 의지로 한다면 해내지 못 할 것이다. 하여간 민들레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지금 자라고 있고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무렵에는 꽃을 피운 상태일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씨앗을 바람결에 온 사방으로 날려 보내는 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들레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우리 안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더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을 것이 틀림없겠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조작하여 성취해내려 한다면 아무것도 옳게 해내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민들레처럼 순리에 따른다면 분명히 우리 안에 든 그 엄청나고 신비한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받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 명백한 차이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육체적 죽음을 뚫고 나아가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어떤 것이 틀림없을 거야. 민들레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 살아낸다면 우리는 죽음을 뚫고 올라가 살아낼 거야. 하느님께서 민들레에게 그 능력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는 이 능력을 주셨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희망을 가져본다. 이 희망은 오늘도 창조주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분이 주신 나와 이웃의 생명, 지구 표면의 모든 생명들을 사랑할 이유를 갖게 하고 사랑할 힘을 내게 한다.

나아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삶을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도 살아가게 한다.

글 전헌호 신부

  • 서울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학사 (1978년)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비엔나대학교(Universität Wien) 신학 석사, 박사 (1990)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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