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교회다! – 비엔나 감리교회 백충관 목사

성경을 보는 시각을 말할 때 스펙트럼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은 마치 그 빛깔의 다양성이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삼각 프리즘에 빛을 통과 시키면 가시광선의 빛깔이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나누어져 분광되듯이 성경의 이야기 역시 매우 많은 빛깔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이라는 주제로 성경을 보면 성경의 이야기는 온통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속’의 의미로 성경을 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이야기는 구속에 관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 분광되는 듯한 빛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어 집니다. 그 중에 ‘가족’1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이 가족이라는 주제로 성경의 이야기를 보면 성경은 온통 가족의 이야기로 가득 찬 책이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범죄한 인류의 심판위에 노아의 가정을 구원하셨고 방주에 탄 가족이 비단 노아의 가족만이 아닌 모든 동물의 쌍, 즉 가족의 구원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또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요셉을 낳고.
그래서 구약학에서 창세기를 분류할 때도 창세기 1-11장까지를 원역사(原歷史,Urgeschichte)라고 분류하고 12-50장까지를 족장사라고 말합니다. 이 족장사가 바로 가족사(家族史)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 성경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철학 속에서도 가정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중 대학(大學)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2 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 라는 뜻입니다. 또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명심보감(明心寶鑑)3 중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역시 가정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스라엘의 가정이 견고하게 지켜지고 보존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를 성경에서 찾아보자면 그것은 쉐마교육4 이라고 확신합니다.

신명기 6장

4. 이스라엘아 들으라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들으라’는 명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게 하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세상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하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손목에 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된다는 고백이 담겨있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는 것은 모든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집 문설주와 문에 기록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을 온전히 주관한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현대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지는 신앙교육이 거의 부재한 상황입니다. 신앙교육이 가정안에서 온전히 이뤄지는 이스라엘은 국가와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안에서도 하나님 경외의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집안에서 가르치는 신앙교육이 이스라엘을 견고케 함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받은 교육이 이스라엘의 인도하는 리더로 사용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사무엘상에는 신앙교육이 잘 되었던 엘가나(한나)의 가정과 신앙교육의 문제가 있었던 엘리제사장 가정의 대조적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5 가정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가르침이 비교되어 나타나 있지요. 가정의 붕괴가 사회와 국가의 붕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사무엘상은 너무나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정의 붕괴입니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가정은 최초의 교회이며 최소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널판의 수와 부부의 갈비뼈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남자를 만드시고 그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갈비뼈는 신체의 중요한 장기를 지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심장과 간 폐 등의 중요 장기는 갈비뼈에 둘려서 외부의 충격에 보호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갈비뼈의 개수를 합하면 48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로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시고 널판을 세워 성소를 구별하시고 만들게 하시는데 이 성소를 구성하는 널판의 개수가 48개입니다.6 성소는 가장 중요한 성물들이 놓여진 곳입니다. 떡상과 분향단, 촛대 그리고 휘장으로 가려져 있고 그 안에는 지성소로 구별되어 법궤가 놓여져 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입니다. 거룩하게 성별된 곳입니다. 이를 믿음의 방법으로 해석해 보면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가 됨은 결국 성소가 됨이며 그 안에 가장 존귀하고 귀하신 주님을 모시는 삶이 가정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온전한 가정은 주님을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명은 가정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가정을 견고하게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거룩할 때 교회가 거룩해집니다. 가정이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 사회가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우리는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바뀌면 가정이 바뀔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입니다. 먼저 내 가정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변화되길 소망해야 합니다. 바울의 빌립보 전도중에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 갇힙니다. 그곳에서 그는 찬양과 기도로 자신에게 처한 상황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때 옥문이 열리고 그를 결박했던 모든 것이 풀렸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도망가지 않았지요. 졸던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 합니다. 바울이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으니 죽지 말라고 말하자 정신을 차린 간수가 바울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이 때 바울이 한 말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여기서 구원의 가치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집의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가 나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예수가 아니라 나의 삶이 가정안에 가족들에게 삶으로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이 참된 구원의 결과인 것입니다. 간혹 성도의 삶을 들여다 보면 교회안에서는 참된 성도 같은데 그들의 가정은 행복하지 않고 화목하지 못한 경우를 보게됩니다. 이는 구원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내 가정안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나타낼 수 없다면 참된 구원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의미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소명을 가진 자들이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가정 역시 주님께서 부르시고 짝지어 주신 모임의 자리입니다. 더불어 그런 소명의 장소는 우리에게 사명을 부여합니다.

저에게는 매우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아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바로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목사로 살기에 가정에 소홀할 수 있는데 그래도 아들에게만큼은 목사이기 보다는 아버지로써 믿는 그 하나님, 삶으로 보여지는 그 하나님을 아들이 진심으로 믿는 것 그것이 나의 평생의 소원입니다. 교회에서 감당해야 하는 목사의 사명과 가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아버지의 사명을 잘 구별하고 온전히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족, 가정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비엔나 교민들에게도 저와 같은 사명을 완수하는 소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장로, 권사, 집사 이기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로써의 신앙의 인도자로 살아가 주시길…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먼저 가정을 만드신 목적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가정의 온전한 사명을 감당함으로 인해 비엔나에 건강한 한인사회가 형성되길 소망해 봅니다.

글 백충관 목사 (비엔나 감리교회)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