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통해 보는 북한의 최신 경제동향’…드라마와 영화로 북한 사회의 변화와 남북관계 조명
2026년 10월 24일 오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 Aula am Campus에서 ‘미디어를 통해 보는 북한의 최신 경제동향’(North Korea’s Latest Economic Trends through the Lens of Its Media) 강연회가 열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오스트리아지회 자문위원들이 준비한 이번 행사는 북한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사회·경제적 변화와 대중문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과제를 함께 생각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강연에는 비엔나대학교 한국학과 제롬 드 빗(Prof. Dr. Jérôme De Wit) 교수와 팔라츠키대학교 아시아학과 가보르 세뵈(Dr. Gábor Sebő) 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두 연구자는 2020년 이후 북한 영상물을 중심으로 촬영과 편집, 이야기 구성, 적대 인물의 묘사 등을 분석하고, 주민들의 시청 환경과 문화 소비의 변화까지 논의를 넓혔다.


첫 번째 강연을 맡은 제롬 드 빗 교수는 최근 북한 드라마에서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세밀하게 전달하는 연출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작품에서는 여러 인물을 한 화면에 오래 담는 장면, 무대극을 연상시키는 정면 중심의 배치, 선언적인 연설과 긴 이념적 대화, 대규모 집단 장면이 주요 특징이었다. 최근에는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 얼굴을 가까이 보여주는 클로즈업과 상대방의 표정·반응을 포착하는 장면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비추는 촬영·편집 방식은 인물 사이의 긴장과 감정 변화를 전달하는 사례로 소개됐다. 장면의 길이가 짧아지고 장소 전환이 빨라지는 한편, 가족생활과 직장 내 문제, 정책 관련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는 구성도 나타났다. 이러한 방식은 개인의 일상과 사회적 과제를 연결하면서 시청자가 여러 인물과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이끈다.
시청각적 표현과 회차 구성에서도 변화가 확인됐다. 감정과 긴장감을 강조하는 배경음악, 세련된 조명과 현대적인 실내 배경이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로 제시됐다. 특히 개인이나 직장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지 않은 채 한 회를 마무리해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드는 구성은, 지속적인 시청을 유도하는 장치로 설명됐다. 정치적 메시지의 전달과 함께 시청자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롬 드 빗 교수의 발표는 이러한 변화를 선전 방식의 현대화라는 문제와 연결했다. 영상 표현이 세련되고 오락성이 강화되는 현상은 체제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북한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시청자의 관심과 감정적 공감을 끌어내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가보르 세뵈 교수는 영상물을 만드는 방식에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확장했다. 발표에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식적인 시청각 여가 공간과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영상물을 접하는 환경을 구분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의 비공식 영상 소비를 설명하며 DVD 플레이어와 USB 메모리 등을 언급했다. 이는 북한의 영상문화를 작품의 내용만으로 이해하기보다, 콘텐츠의 유통 경로와 주민들의 시청 습관까지 고려해야 함을 보여줬다.
구체적인 영화 분석 사례로는 《72시간》(2024)이 소개됐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약 4시간 분량으로, 2025년 1월 1일 북한 TV에서 처음 방영됐다. 세뵈 교수는 영화가 남한을 전쟁의 도발자로 묘사하는 북한의 기존 선전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발전된 영상 기술로 이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표현 방식의 현대화와 정치적 메시지의 연속성이 한 작품 안에 함께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적대 인물을 형상화하는 방식도 주요 논점이었다. 발표에서는 남한 측 적대자가 익명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인물로 등장하며, 미국에 무조건적으로 종속된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는 북한의 대남·대미 인식이 영화 속 인물 설정과 대립 구도를 통해 전달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두 강연은 북한이 한류와 해외 문화의 유입, 젊은 세대의 변화하는 문화적 기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영상 표현과 이야기 구성에서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고, 오락성과 감정적 몰입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붙잡으려는 변화가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체제 선전 역시 시청자의 취향과 여가 생활을 고려하며 전달 방식을 조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와 함께 북한의 대남 인식 변화도 논의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북한은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통일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른바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한을 통일의 상대가 아닌 적대 국가로 바라보는 정책적 전환을 드러낸다. 이는 북한 영상물 속 남한 묘사를 읽어내고,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고민하는 데에도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향방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참석자들은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평화와 대화의 가능성을 넓혀갈지 함께 고민했다.



이번 행사는 드라마와 영화라는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힌 자리였다. 영상물이 주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당국이 어떤 가치와 생활상을 제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 하는지를 살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오스트리아지회 자문위원들이 준비한 이번 강연회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역할과 앞으로의 과제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자료제공: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오스트리아 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