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혹시 ‘영어의 날’ 혹은 ‘독일어의 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어릴 적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 자신의 언어를 기념하는 기념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니 당연히 한글날을 기념하는 것일 뿐, 하나의 언어를 기념하는 기념일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한글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실용성과 독창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지만 외국에서 살며 여러 나라의 언어를 접하다 보면, 전보다 더욱 한글의 위대함에 대해 감탄할 때가 많은 듯 하다. 일례로 어떠한 외국어를 듣더라도 소리 나는 거의 모든 발음들을 쉽게 한글로 적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은 한글의 대단한 장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외국 친구들이 생전 듣지 못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고 눈을 끔벅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우리는 비록 그 뜻은 잘 모른다 할지라도 그 소리를 받아 적고 비교적 정확하게 다시 따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 이야기로는 한글의 뛰어남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訓民正音)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사람들은 한글을 이야기할 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유일한 언어라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내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한글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한글의 창제 목적, 원리 그리고 해설을 묶어 편찬된 책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름은 글자의 이름인 ‘훈민정음’과 같아 혼란을 주기도 하는데, 책에는 해례(解例)가 붙어있어 ‘훈민정음해례’ 혹은 ‘훈민정음원본’ 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사실 한글처럼 제작자와 반포일이 분명한 언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또한 그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진 제작 원리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담겨있는 해설서가 존재하는 언어도 아마 전무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반포에 대해서는 아마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에는 우리 고유의 말은 있었으나 글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중국의 한자를 빌려 글을 삼았으나, 하나하나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표의문자인 복잡한 한자를 읽고 사용하는 것은 특정 수준이상의 교육을 받은 특권층의 전유물 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백성들은 글을 모르는 채 불편을 겪거나 혹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의 마음이 훈민정음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훈민정음 서문 – 나무위키 발췌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경우)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훈민정음 서문 현대어 해석

한글은 문창살을 보고 만들었다?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왜 과학적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한글이 문창살을 보고 만들어 졌다는 설이 돌기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창호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서로 겹쳐지는 문살들의 모양이 제법 ㄱ,ㄴ,ㄷ 등 자음과 닮아 묘하게 설득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혹 누군가는 별자리의 모양에서 글의 모양을 따왔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과 함께 잠잠해지게 되었다. ‘훈민정음’에 따르면 정음 28자는 각각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ㄱ은 혀뿌리가 목을 막는 모양을 형상화 한 것이며,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형에서 파생형이 생기게 되는데, 다시 말해 ㄱ에서 ㄲ과 ㅋ 같은 자음들이 파생되는 원리이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한글의 모음은 모두가 사실 점(ㆍ)과 가로, 세로의 작대기 두 개(ㅡ,ㅣ)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이 세 획은 사실 각각 ‘하늘, 땅 사람’을 의미한다.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다?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 세종대왕이라는 대답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마는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라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들은 세종대왕의 지시아래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든 것이고, 우리가 대표자인 세종대왕만을 기억하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극심한 대립을 이루는 의견도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 혼자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훈민정음이 공표가 될 때까지 새로운 문자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것, 또한 글자 창제와 관련해 집현전 학자들의 이름은 한글창제 이후 1444년에야 역사서(세종실록)에 나타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언어학자였던 세종대왕이 혼자 한글을 고안해 내고 가까운 신하들에게 새 문자를 알릴 해설서를 만들게 하였다고 믿는다.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한글창제에 대해 세종대왕이 업적이 위대한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경일로 기리는 한글날

1443년 완성된 훈민정음은 시험기간을 거친 후, 1446년(세종 28년) 공표되었다. 그러나 당시 성리학이 뿌리깊게 깔려있던 사회에서 중국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문자를 갖는 것은 좋게 생각이 되지 않았고, 한글은 언제나 한자에 비하여 격이 떨어지는 언어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한글은 450년이 지난 갑오경장(1894년~1896년) 때에 와서야 국문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한글날이 처음으로 기념된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한글의 사용이 또 한번 큰 어려움에 직면했던 때였다. ‘조선어연구회’(오늘의 한글학회)는 1926년 음력 9월 29일,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기념식을 열고 이날을 제 1회 ‘가갸날’로 정하였다. 당시는 아직 ‘한글’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지 않던 때였다. 따라서 ‘가갸거겨, 나냐너녀’로 전파되던 한글의 앞 절을 따라 한글을 ‘가갸글’로 부르고 있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한글학자 주시경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크다는 뜻의 ‘한’자를 붙여 ‘큰 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후 ‘한글날’로 개정된 ‘가갸날’은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여기에 기록된 훈민정음 반포의 날(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이 한글날로 확정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한글날은 1946년부터 법정공휴일로 지켜지게 되었으나 1990년에 접어들며 쉬는 날이 너무 많음을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된 채 기념일에 머물다가, 2006년부터 다시 국경일로 제정되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글 윤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