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재 오스트리아 한인원로회의 제언과 한인연합회의 창설로 설립된 COVID-19 방역대책위원회는 수개월간 한인동포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도처에서 고군분투해 왔다. 대책위원회는 오늘날과 같은 시국에 한인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다했고 또 그 중심에 위원장직을 맡은 황병진 한인연합회 부회장이 있었다.

 

Q. 안녕하십니까, 위원장님! 여러모로 공사다망하신 중에 귀한 시간 내어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먼저, COVOD-19 방역대책위원회와 맡으신 소임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본 기관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심각해짐에 따라 재 오스트리아 의사협회와 간호협회, 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 그리고 한인연합회가 협력하여 동포들의 감염을 줄이고 이에 관련되는 조치와 관리를 하기 위해 발족된 비영리 기관입니다. 핫라인 전화를 개설하여 감염, 방역과 정신적인 상담 및 병원 통역이 필요한 경우 도움을 주었으며 자가격리 기간에 생필품 조달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조달할 수 있는 연락망을 갖추었습니다.

 

Q. 대책위원회를 운영해 오시며 많은 고충 그리고 보람 또한 있으셨을 것으로 사려됩니다.

갑작스레 생겨나고 하루하루 급변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스스로 너무도 모르는 영역이었기에, 기본적인 수칙부터 상반되는 많은 현황에 대한 많은 미디어 자료를 상시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점이 있었어요. 또한, 수시로 변하는 오스트리아의 방역 지침에 대해 긴장을 놓지 않고 대기해야 했고, 간혹 오스트리아를 떠나게 될 때도 핫라인 전화를 꼭 챙겨가며 중요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더욱 난감했던 일로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핫라인 연락망과 소통이 수월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업데이트 되지 않은 정보를 주어 오류가 생기던 일도 있었던 점입니다.

보람되었던 일은, 우선 확진자와 매일 통화를 하며 증상을 체크하고 언제든지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안심을 시켜 줄 수 있었던 점입니다. 또한 장기적인 락다운으로 인해 정신적인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대화하고 싶은 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들어주고 도와줄 수 있었던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를 떠날 때 PCR-Test를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알선해주고 상반된 정보를 주며, 통역해주던 일 등 크고 작은 일들에 관계없이 동포들과 방문객들을 도울 수 있었던 일들이 소소한 보람으로 남는 것 같아요.

 

Q. 이번 39대 한인연합회 임기를 끝맺으며 대책위원회도 함께 해체된다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COVID-19 방역대책위원회는 현재의 한인연합회 사업으로 발족되었고 저 또한 현재의 연합회 임원으로서 위원장에 선출되었기에 대책위원회는 임기가 끝나는 동시에 자동 해체가 되게 됩니다. 차후의 한인연합회에서는 부디 방역대책위원회가 불필요해지기를 바랍니다. 임기를 마치며, 이 중책을 맡고서 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로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다소 아쉬운 마음입니다. 다만 항상 준비하고 대기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세로 임했기에 그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Q. 대책위원장님께선 한인연합회 부회장님이시자 겸 한인문우회장님이시기도 하십니다. 위원장님을 모시고서,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하는 문우회 이야기를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는 2022년에 발족 1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간 문우회의 문집 <도나우 담소>를 네 차례 발간하였고 ‘문학의 밤’ 또한 4회 개최하여, 글을 통해 삶을 우려내는 실제와 상상의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동포들과 더불어 가졌습니다. 22년도에는 10년의 세월 동안 지도 선생님들과 회원들이 연구하고 번뇌하며 쌓아온 공과 정성이 담긴 글을 통하여 더욱 성장한 문학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간 회원 중의 몇 분이 한국과 유럽에 작가로 등단되는 영예도 가지게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회원들이 펼쳐내는 필력으로 한인사회의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 현지사회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길 꿈꾸어 봅니다.

 

Q. 위원장님께선 오스트리아에 자리 잡으신지가 오래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중 대통령상도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위원장님 개인에 대한 또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저는 비엔나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2008년에 퇴직하였습니다. 빈에 와서는 유학생과 방문객, 여행자들의 언어장애와 현지 이해에 대한 미흡한 점으로 불이득을 당했을 때 권리를 찾아 주며 해결해 준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건강보험이 없이 병원에 입원한 경우 상당한 치료비가 청구되었는데 해당 병원 원장이나 담당 변호사와 직접 상담하여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누적이 되어 대통령 상을 직수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2011년부터는 비엔나 가톨릭 교구청에서 양성하는 병원 원목과 무료 상담자의 교육을 받고 EU에서 인정되는 봉사자로 Wielhelminenspital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와중 10년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냈고, 4년 동안 재오 간호협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응용미술대학에서 공부한 저의 남편 소병근은, 건축공학박사로서 인테리어디자인교수로 정년퇴직하고, 이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미술 강의를 해오며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국가에서 국제미술워크숍에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1995년에는 한국에서 ASROPA국제예술전시를 발족하여 약 100개국의 작가들이 10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했고, 이로써 한국 지방자치단체에 ASROPA국제미술관을 건립하는 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슬하에 자녀는 두 명으로, 아들 소세승은 현재 대한항공에서 여객운송 총괄 담당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인 소세라는 독일의 제약회사에서 마케팅 톱메니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한인들께 전하고프신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끝으로 한인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이제 우리는 소위 ‘위드 코로나’ 시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확진자가 발생한 경우, 당사자가 희생자임을 생각하고 더욱이 배척하거나 경계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이 바이러스 퇴치를 위하며 상대를 위하는 배려라 여기면서 잠시 대처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확진된 이들에게 소위감을 주지 않길 바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연한 오늘날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유머 아닌 유머가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 설파하고 싶습니다. 즉, 물리적 변화가 아닌 심적인 합심을 통해 나 자신을 위하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다음의 슬로건을 또한 외치고 싶습니다. “지구는 하나니, 우리도 한 마음이라!”

모든 분들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글 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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