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밤, 3분의 1 온달이 도나우 강물위에 뜬 밤,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에선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의 제 6회 ‘도나우 담소’가 열렸다. 진정 ‘도나우 시티’ 강물위에서 열린 ‘담소’(談笑)였다.
비엔나의 제일가는 명 사회자, 어느 방송국 앵커보다도 잘한다는 한성애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부회장의 멋진 개회선언이 발하면서 마이크를 잡은 황병진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 회장도 도나우 강을 서두로 삼았다.
“자, 여러분, 지금 우리는 도나우 강 위에 두둥실 뜬 유람선에 타 있어요. 달빛은 밝고, 밤은 깊어 가고, 우리들의 정은 뜨거워지기만 합니다. 자,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문학의 한마당 담소를 나누어 봅시다.” 황병진 회장은 인쇄된 개회인사 말씀보다도 12년차로 갖는 문학의 밤, 격년제로 6회째 발간한 회지 ‘도나우 담소’의 출판기념에 기쁨을 억제하기가 힘든 것 같았다.
진정,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는 할 이야기를 많이 가졌다.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캐나다, 유럽, 남미, 호주 등에 생긴 동포 사회에는 문우회가 몇 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단체들은 아쉽게도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모임과 출판 활동이 부정기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스트리아 한인문우회는 지난 12년 동안 매주 월요일의 공부 모임을 가져 왔다. 격년의 회지 출판, 문학의 밤 개최, 2명의 한국문단 등단문인(소설가 홍진순과 김자겸 회원)배출 등을 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회원 모두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이지만, 창립자 겸 회장으로 12년 동안 한결 같이 문우회를 이끌어 온 황병진 회장의 공로가 대단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격언이 있다. 오스트리아 문우회에도 이 격언은 당연한 것이다. 제 6회 문학의 밤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모두 명작들이었다. 어느 누가 여기에 반대를 할 것인가! 회원들이 정성들여 출판한 도나우 담소 제 6집의 내용물은 단밤처럼 토실토실 여물었고, 자스민 같은 향기가 나는 것들이었다.
첫 번 낭송자 강유송 의학박사의 시는 ‘송아지’였다. 옆집 외양간에서 태어나자마자 없어진 송아지, 어떻게 없어진지는 모르지만, 어둠속에서 들려 온 어미소의 울음. 아,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의 음성이련가!
재 오스트리아 한인의사협회 회장을 지낸 서혜숙 박사의 시낭송이 잇달았다. ‘겨울 밤 보름 달’과 ‘축구 선수’였다. 두 편의 시는 제목은 극히 상반되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두 폭의 그림과 같다. 첫 시의 제목은 ‘겨울 밤 보름 달’이지만, 진작 언어에는 아무도 없고, 구름도 새도 없고, 밤새 쓸쓸히 새벽만을 맞이한다. ‘축구’는 승리한 자에게 환희를 주고, 패배한 자에게 눈물을 준다. 두 폭의 시는 보름달의 거울과 축구경기의 화면으로 삶의 덧없는 면들을 생생하게 보게 한다.
노금자 회원은 2년 전에 참가한 문우이다. 충남 대전시의 어느 여고 교사를 지낸 노 회원은 수필 ‘둔갑한 내 남편’을 낭독 했다. 유교집안 출신의 대학 교수 남편이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 교인으로 변하고, 결혼 생활을 통하여 멋있는 남편으로 변화해온 과정을 잔잔한 웃음과 따뜻한 정서로 감동을 느끼게 했다.
김방자 문우는 아마 문우회의 창립 회원이면서 가장 오랜 원로 회원이 아닌가 싶다. 의대 교수이며 의사였던 남편을 일찍 여의고 문학에 정진해 온 분이다. 시, 수필, 단편에 모두 일가견을 가진 분이다. 김방자 문우는 이번 문집에 발표한 명작 4편의 연작시 ‘이별곡’ 중에서 2번 ‘명이’(나물 산마늘)와 현대 시조 ‘봄’을 낭송했다. 나는 이 두 시에서도 감동을 느꼈지만, 문집을 보고 따라 읽어 가다가 별세한 남편을 두고 쓴 이별곡 1. ‘마지막 눈물’, 3. ‘정년의 꿈’, 4. ‘기다림’을 읽고, 소리 내어 울 뻔 했다. 아마 시인이 이 시들을 낭송에서 제외한 것은 낭송하다 통곡할 것을 예방하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올해부터 회원이 된 공채은 문우는 활동이 많은 분이다.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 이사, 민주평통자문회의 오스트리아 지회 회원, 국제부인회 임원 등으로 동포 사회를 위해 분주한 분이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라는 제목의 신앙 수기를 낭독했다. 오랜 세월 수련해 온 진솔하고 엄숙한 신앙 고백이었다.
김복희 문우는 우선 흥미로운 필명을 가지고 있다. ‘무개’이다. ‘아무개’라는 데서 줄인 말로 알려졌다. 이름이 없는 것 같지만, 김 문우의 시는 이름이 있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다. 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김 문우는 이번 문집에 ‘내 작은 그림자들’을 비롯한 5편의 시를 발표했다. 그중 낭송한 시 ‘열병’은 김 문우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시를, 삶을, 열병처럼 안고 사는지를 감동으로 느끼게 한다.
심현희 문우는 2023년부터 문우회에 나오고 있다. 유엔부인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는 심 문우는 시 ‘그 맛이 나질 않는다’를 낭송했다. 간장을 만드는 작업을 통하여 어머니의 집 간장 맛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문집에 낸 ‘어떤 그리움’은 할머니가 그 속에 보이는 저녁 노을 속의 그리움이다.
정선미 문우도 새얼굴이다. 비엔나의 한 국민고등학원(VHS)에서 한국어 교사로 있는 정 문우는 기행문 ‘경이로운 만남’을 낭독했다. 기행문은 처음부터 신기한 긴장을 느끼게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자동차로 놀웨이 북단, 여름에는 해가지지 않는 백야의 센야섬(Senja Insel) 도브레피엘 국립공원(Dovrefjell-Sunngalsfjella-Nationalpark)을 방문했다. 아, 거기서 본 여덟 마리 사향소!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진정한 경이로움이었다.
우옥분 문우는 최고 열정의 시인이라고 할까? 35년 전 클라겐푸르트 병원의 간호사로 오스트리아에 첫발을 디딘 우원로 회원은 클라겐푸르트의 제일 첫 번 째 한인이다. 지금도 클라겐푸르트 한인회의 어머니로 불리는 우 문우는 매주 월요일 오전 6시에 기차를 타고 4시간을 와서 문우회 월요강좌에 참석한다. 강좌를 마치고는 또 4시간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우 문우가 낭독한 시 ‘한국 배나무’는 그녀가 오스트리아에 올 때 가져와 심은 한국 배나무의 노래다. 한 조각 깨물 때 마다 고향이 떠올라 울컥하는 동요같이 아름다운 시이다.
아주 드물게 한국 간호장교 복무 후 유럽에 와서 자리 잡은 홍진순 작가는 한국문단에 등단한 원로 작가이다. 이번 문집에 시 ‘그리움의 여백’, ‘너는 지금 어디에’, ‘할미꽃’ 3편을 발표하고, 작가의 특기인 콩트 ‘환상적인 남편’을 남겼다. 홍 작가가 낭독한 콩트는 그야 말로 번쩍하는 불빛 같이 짧은 것이었지만, 환상을 좋아하는 어느 부인의 환상을 내 몰아 내 버리는, 성질 급한 어느 탈 환상의 남편을 번쩍하게 읽도록 하는 마법의 콩트였다.
비엔나에서 여러 면으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는 원로 이영실 문우가 순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재 오스트리아 한인간호협회 회장을 지낸 이 문우는 문우회의 창립 회원이면서 비엔나 한인여성합창단 총무, 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봉사하고, 재 오스트리아 한인원로회 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시와 산문에 모두 능한 이 문우는 이번에 현대 시조 ‘주름아 주름아’를 낭송했다.
문학의 밤 시간을 조정하기 위하여 황병진, 오덕희 문우는 시와 독후감 등을 발표하지 못했다. 이번 문집에는 물론 문학의 밤에서 소개 되지 못한 시, 현대 시조, 수필, 콩트 등도 많다.
문우들의 낭송과 낭독이 끝난 후 12년 문우회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영상 감상이 있었다. 특별 순서로 문학의 밤에 참석한 소감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새로 부임해온 주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 이현정 공사와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 임진홍 원장,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이덕호 회장이 문학의 밤에서 느낀 감동을 의미있게 말했다.
문학의 밤 끝 순서는 2023년 1월 첫 주부터 문우회의 지도 교사로 함께 문학 작업을 이끌어 온 정현선 지도 교사가 회원들에게 수고에 대한 감사로 장미를 한 송이씩 선물하고 간단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정 교사는 생각지도 않았던 언니 문우들의 스승이 되어 지나 온 2년이 너무나 보람찬 세월이었다고 말하고, 멋있는 여성들의 멋있는 이야기들을 발표해 주신 언니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황병진 문우회 회장을 비롯한 문우들은 마침 이날 함께 참석한 새로운 한국 오스트리아 김충자 편집인이 84세 생일을 맞이한 것을 미리 알고 선물과 함께 축하를 해 주었다.
문우회 회원들이 손수 준비한 음식으로 축하만찬을 들고 유엔 시티로 나왔을 때 달빛은 더 밝았다. 나의 마음은 도나우로 달렸다.
도나우 인젤의 도나우 강에는 달빛이 더 영롱하게 빛을 내며 출렁이었다. 그 출렁이는 달빛 속에 한강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순간 비엔나 문우회 회원 얼굴들이 모두 한강처럼 출렁이며 떠오른다. 한국 사람들 속에는 한강이 많구나. 그래서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구나. 도나우 강에서 한강이 줄줄이 나왔다.
기사제공: 새로운 한국 오스트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