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국윤종

테너 국윤종

지난 2월 5일, 비엔나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열렸던 2019 재오 한인 신년음악회는 여러 음악가들과 음악을 또 한국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낸 감미롭고 아름다운 밤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직 연주가 시작되기 전, 자리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 프로그램에서 나는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테너 국윤종 씨. 약 10여년 전, 내가 한창 오페라에 빠져 있었을 때, 비엔나 폭스오퍼에서 아직 유럽무대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 성악가가 오페라 리골레토 프리미어레(작품의 초연)의 주연을 맡는다고 알려져 음악계가 떠들썩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세간의 모든 염려와 비평을 단 한번의 공연으로 잠재웠던 그의 무대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후 비엔나는 물론 유럽과 또 한국으로 그 연주 무대가 넓어지며 개인적으로 비엔나에서 그의 무대가 그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인 신년음악회에서 테너 국윤종씨를 다시 보게 된다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역시나, 그의 연주는 관객들에게 감격과 환희를 선사했다.

신년 음악회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중앙역의 한 카페에서 국윤종씨를 만나 그간의 궁금했던 것들을 물을 기회가 있었다.

국립오페라단 마농의 한 장면

Q. 이번 신년음악회에서 마스카니의 현실주의 오페라 에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 뚜릿두(Turiddu)를 부르셨는데, 그동안 선생님의 이미지와 많이 달라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 곡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하하.(웃음) 네. 사실 신년음악회니까 사람들이 잘 알고 또 좋아하는 대중적인 곡이나 희망과 기쁨에 가득한 곡을 불려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요즘 제가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뚜릿두를 보며 어쩌면 지금의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작품속에서 그는 가진 것 없는 시골 청년입니다. 어쩌면 질걸 뻔히 아는 싸움에 무모한 도전장을 던지고 비장한 마음으로 결투에 나가죠. 제가 불렀던 뚜릿두의 아리아 <Mamma, quel vino è generoso>는 결투에 나가기 직전 뚜릿두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작별인사와 같은 곡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두려움과 갈등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그의 무모함. 그것이 오늘날을 이 세상의 살아가는 저에게 새해, 새로운 결단을 외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죠. 먼저는 저의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외칠 수 있는 스스로의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Q. 예전에는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을 기점으로 음악활동을 하시고 계신가요?

A. 2015년,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가족들과 한국 행을 결심했어요. 저는 당시 이미 계약된 일들이 있었기에 완전히 한국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고, 모든 극장과의 계약을 마칠 때까지는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생활을 했죠.요즘은 연세대학교 초빙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에서 더 많은 연주의 기회를 가지고 있어요. 작년에는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독일 오페라 국내 초연 무대를 가졌고, 또 프랑스 오페라 연주도 마쳤습니다.

폭스오퍼 리골레토 초연당시 – 사진: IOCO kultur im Netz

Q. 선생님의 주요 레퍼토리 하면 리골레토나 라보엠 처럼, 밝고 따스한 미성의 목소리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지금 말씀하신 곡들은 예전 이미지와 전혀 느낌이 다른데요?

A. 맞아요. 비엔나의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저의 역할은 리골레토 만토바 공작이나, 라보엠의 루돌프 입니다. 놀랄일도 아닌게, 폭스오퍼에서 6-7년을 일했지만 작품 수를 따지면 10 작품이 채 안되요. 대신 한 작품당 100회 가까이 공연을 하곤 했죠. 하지만 저는 사실 새로운 작품을 많이 찾는 편이예요. 그리고 현대곡도 좋아하구요. 사실 일본에서의 데뷔는 벤자민 브리튼의 이었고, 한국에서는 창작오페라 <윤동주>,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백범 김구>등의 작품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Q. 이번 신년음악회에서 들은 선생님의 소리는 또 예전과는 많이 다른 듯 해요.

A. 40대가 넘어가면서 레파토리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렇다고 소리가 변한 것은 아니구요, 또 리골레토나 라보엠을 부르면 다시 예전 그 고운 소리가 나요. 참 신기하죠. 사실 많은 분들이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데 왜 더 빨리 수퍼스타가 되지 못하냐는 농담섞인 질문을 하시곤 하셨죠. 저도 사실 조바심을 가지고 토스카, 투란도트 등의 배역을 욕심 낼 때도 있었어요. 실제로 큰 극장에서 이런 유명 배역에 대한 계약도 들어왔었구요. 그런데 그때마다 저의 선생님께서 저를 설득하셨죠.
제가 비엔나 국립음대에 있을 때 저를 가르치셨던 Gerhard Kahry교수님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부터 저를 눈여겨 보시고 비엔나 유학을 권하셨죠. 제가 비엔나에 도착한 건 사실 10월이라 이미 입시가 다 끝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들을 모아 특별 시험을 열어서 저를 최고 연주자 과정에 받아주셨어요. 교수님은 저에게 ‘역대 자기가 들은 테너 중에 가장 울림이 깊은 연주가’라며 극찬해 주셨죠. 지금까지도 저는 교수님과 연락하며 모든 연주나 계약시 조언을 구하고 있어요. 교수님은 제가 조바심을 낼 때도 항상 ‘아직 아니라’며 소리꾼이 아닌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 주셨어요. 이번 신년음악회 때도 오셔서 제 연주를 들으셨는데, 연주 후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배역을 다 해도 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오래 연주하는 건강한 테너이고 싶어요. 소리관리를 잘하면 모차르트부터 바그너까지 다 부를 수 있죠. 또한 서두르지 않고,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다양한 음악들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준비하여, 흉내내는 가짜 음악이 아니라 내 속에 녹아든 진정한 나의 음악을 표현해 내고 싶어요.

폴스오퍼 라트라비아타 공연 – 사진: volksoper.at

Q. 그렇다면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사실 어머니의 병환으로 한국에 돌아온 후, 한동안 유럽 무대와 멀어지게 되었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난번 한국에서 연주했던 오페라 에서 함께했던 음악가들을 통해 다시 유럽무대로의 러브콜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올해가 저에게 새로운 시작의 해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유럽뿐 아니라 미주 무대에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도 수술 후 몸이 많이 회복되셔서 걱정도 줄었고, 정말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하게 이어져 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가수로서의 일은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기억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요. 지금도 주일이나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12월에는 공연 스케줄을 잡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유럽 극장들은 주일 공연을 피할 수 없지만, 그럴때도 아침예배 드리고, 오후 청년부 모임까지 다 마치고는 극장으로 향합니다. 선교활동도 교회가 크건, 작건에 관계없이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어릴적부터 쭉 클래식을 공부했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밴드부에서 드럼도 치고, 째즈와 모던을 다 경험했죠. 성악을 시작한 것은 군대 재대 후 일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성경 말씀이 중심 되는 극음악, Music Bible 창작 작업에도 힘쓰고 싶습니다.

Q. 너무나 멋진 비전이에요. 성경음악 창작활동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어요?

A. 음악을 하다보니 예술이 우리 사회를 향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보게 되죠. 세상은 허무하다. 이 세상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문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문제는 깨달은 그 다음이죠. 그러므로 당신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삶의 허무와 슬픔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비극의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보면 윤리적, 신학적 판단이 점점 모호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앞에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일이 이제 믿는 사람들의 몫이겠죠. 포스트 모더니즘 앞에서 정치가도, 교육자도, 종교인도 대중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쉽게 입에 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술가는 할 수 있더라구요. 이것이 곧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되니까요. 그래서 이것이 음악을 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라 생각하게 되었죠.

Q. 짧은 시간, 그러나 다시 빈을 방문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이번 빈 여행에서 가장 큰 결실은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여러 분들을 통해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느끼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연주자들 또 연주회 관계자들, 그리고 그리웠던 분들 한분 한분과의 교제시간들.. 이 모든 시간들이 저에게 너무나 큰 위로였고, 마치 하나의 예배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국윤종씨의 소리는 깊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분의 삶은 더 깊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스스로를 낮추며 더 큰 이상을 위해 정진해 가는 그의 모습이 눈부시다 생각되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찬란히 빛날 그의 내일과 그의 비전을 기대해본다!

글 윤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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